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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가의 상자 -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만화 영화 같은 일상
스즈키 마미코 지음, 전경아 옮김 / 니들북 / 2025년 2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아주 애틋한 감정을 선사해주어, 사랑하는 작품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나는 명장면들이 있고, 삽입되었던 '컨트리 로드'라는 노래는 멜로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컨트리 로드라는 곡의 일본어판 가사를 쓴 사람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다니.
반가운 동시에, 세상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름도 모르는 그 작사가의 책을 오랜 시간 후에 내 방에서 읽게 될 줄이야.
이 책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아버지를 두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거대한 존재감이다.
유년시절의 낙원과도 같은 곳, 세상은 몰라주던 나의 동심을 일깨워주었던 곳, 환상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선물해주었던 곳.
그곳이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자, 그곳에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필자의 집에 수시로 왔다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권은, 무려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십대 시절에 작사를 의뢰 받고, 그 결과물에 대해 직접 의견을 나누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와 관련한 외전 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가장 빼어난 부분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지브리에 대한 것이 아닌, 유명 작가들 및 작품들에 대한 얘기가 아닌, 필자 자신이 서술해가는 자신의 얘기들이다.
필자는 여러 에피소드를 펼쳐내가면서, 유년시절, 환상과 현실이 공존했던 세상에 대해 써내려간다.
예컨대, 동네에서 만난 낯선 중년 여성은 그 무뚝뚝함과 이질성으로 인해 마귀할멈이 되고,
사람들에게 개방적이던 자기 가족의 집은 시공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상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흥미진진하던 세상은 필자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환상과 현실이 분리되어 명확해진다.
마귀할멈처럼 무서웠던 의문의 여성은 어느덧 동년배의 시각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대상이 되고,
가족들은 한 집이 아닌, 각자의 집에서,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