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과 경희는 교수실을 나와 대학가 근처에 있는 '목로주점'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아담한 술집으로 들어가 앉는다.
주인이 경희를 알아본다.
교수님 오셨어요? 오랜만에 오셨어요.
네. 장사 잘 되시죠?
네. 교수님 덕분에 잘 됩니다.
우리 동동주 하고 파전 주세요.
경희는 주인아저씨와 친근하게 대화를 하며 주문을 한다.
시중! 여기 있으니까 우리 옛날 대학시절에 우리 아지트 ‘촌뜨기’ 생각나지 않아?
맞다. 우리 그때 진짜 거기 잘 갔는데. 시중은 웃는다.
말하는 사이에 종업원이 막걸리가 담긴 노란 항아리를 놓고 간다.
시중은 항아리에 있는 쪽박을 들어 막걸리를 퍼서 경희 잔에 따라 주고 자기 잔에도 채운다.
아름이는 잘 있어?
어. 잘 있지.
너네 결혼 안 해? 사귄지가 언젠 데 여지껏 그러고 있어!
그러게! 시중은 한숨을 쉬며 막걸리를 마신다.
경희 너는 결혼 안 해?
나! 나는 혼자 사는 게 좋아. 주위에서 결혼 한 사람들 보면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감정싸움이 많은 것을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혼자 사는 게 좋은 거 같더라.
외롭진 않아?
외롭긴!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구만. 또 나는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 그냥 나 혼자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이나 다니며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거 같아.
경희야! 나도 혼자 살까?
왜! 너는 아름이가 있잖아! 뭐 문제 있어?
아니. 문제는 없는데 그냥 내 자신이 어떨 땐 너무 싫어! 왜 내가 이렇게 태어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신경 쓰는 게 싫어서.
문제 있네! 뭔데? 그 당당한 시중이가 이렇게 비관주의가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게 싫어. 그냥 싫어.
시중답지 않은 소리만 하네.
둘은 막걸리를 꽤 마셨다.
내가 아는 시중은 그 경계를 넘어 섰다고 생각했는데?
경희! 나도 인간이야. 뭐라고 해도 장애인이고!
그거야 그렇지! 그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 하지만 넌 그걸 넘어 섰잖아?
맞아. 넘어 섰는데 그래도 내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의 마음이 있다는 거야.
경희는 시중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시중! 그래도 넌 잘 살아가고 있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아니야. 나도 된 건지 알았는데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올라 와.
그건 시중이나 나나 똑같은 거 아닌가! 나도 내가 여자라서 안 좋은 대우나 못하는 일이 생기면 한 숨이 절로 나오는데?
시중!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 개인 특정화 시키는 거 아니야? 그렇게 세상을 보며 살아가면 살아가기 힘들지 않겠어! 내가 생각하는 시중은 그런 몸에도 불구하고 대단하고 어떨 땐 존경스럽기까지 한데 말이야.
너! 아름이하고 뭐가 잘 안되는구나? 경희는 눈을 조리며 시중에게 말을 한다.
아니. 그냥.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아름이 부모님에게 떳떳이 나설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
이봐~ 답이 여기 있었네. 아직도 아름이 부모님을 안 만났구나?
이번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좀 자신이 없고 그래.
초라하긴 뭐가 초라해? 너 정도 스펙이면 사윗감으로 최고지. 시중! 너무 기죽을 것 없어. 우리 대학에 장애인 교수가 있는데 그 사람은 소아마비라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부인은 비장애인이더라. 옆에서 보면 얼마나 닭살 돋게 사는지 동료 교수들이 다 닭살 부부라고 놀려 댈 정도로 잘 살더라. 그 사람에 비하면 넌 지팡이도 안 짚잖아? 그러고 넌 활동적이고 말야. 옛날 패기는 다 어디로 가셨나요? 니가 말했잖아, 사람은 다 똑같다고!
시중! 어쩜 여기서 너의 모든 것을 더 바라는 것은 너의 허망이고 욕심일 수도 있어.
경희의 말에 시중은 순간 생각한다.
자신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어쩜 허망이고 욕심일 수 있다는 경희의 말에 시중은 막걸리를 들이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