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뒤집어 읽어도 그런 예수는 없다 - 무명의 목사가 모든 불신자와 오강남 박사에게 던지는 물음표
박진호 지음 / 나됨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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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감히 이 책을 '무명의 한국인 목사가 쓴 최고의 기독교 변증서'라고 평하고 싶다. 한국의 기독교가 낳은 문제점과 한계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출판한 오강남 교수의 글을 많은 지성인들과 청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으리라. 종교학자 오강남의 <그런 예수는 없다>는 책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예수의 교리들은 이 시대에 '벌거벗은 임금님'(The Emperor's New Clothes)임을 용기있게 외치는 듯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의미가 있고,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이라는 것은 문자적이며, 구시대적인 해석이라고 그 책은 용기있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무명의 목사인 저자는 성경을 성경에 비추어서 정당하게 해석할 것을 조리있게 밝히고 있다. 너무나도 자상하게 마치 이야기하듯이 책을 써내려가서 밤새워 이야기 하고 싶은, 아니 밤새워 듣고 싶은 선생님의 가르침 같았다. 무명의 목사의 이 책은 절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원고를 찾아서 소유하게 되었다. 나는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의 <소크라테스, 예수를 만나다> Socrates Meets Jesus를 통해서 신학적인 회심을 하였다. 이 책은 마치 그런 책과도 같았다.

 

예수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자신을 증언하였다. 그의 제자 베드로도 '예수는 구원자라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예수 자신과 그의 수제자 베드로의 말보다는 전혀 그를 알지 못하는 21세기의 학자들의 말을 더 믿는다. 무언가 어폐가 있다. 정당하지 않은 태도이다. C.S.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언급하듯이 예수는 본인이 말한 대로 구원자이든지, 희대의 사기꾼 둘 중에 하나이다. 그 중간은 없다. 그런데, 성경을 자기의 이성으로만 접근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를 구원자라고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인류의 스승' '성인'이라고 추켜세우지만, 그 저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임을 막기 위한 사탄의 전략일 뿐이다.(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3장 참조.)

 

저자는 '성경의 예수' '성경의 기독교'를 바로 보라고 말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부는 다음 문제이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그대로의 예수를 먼저 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는 신관, 성경관, 기독론, 교회론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 자신도 무신론자였고, 기독교를 비판하다가 결혼 이후에 비로소 기독교의 진리를 인정하게 되고 성경의 진리에 일생을 헌신하기로 한 무명의 목사이다.

 

내게는 엘리트 학자보다도 이 무명의 목사의 웅변이 얼마나 힘있고 진실되게 와닿는지 모른다. 참으로 그의 용기와 진솔한 수사학에 경이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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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귀향 - 기독교, 이성, 낭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적 옹호서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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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C.S.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 부제: 기독교, 이성과 낭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적 옹호서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열쇠는 전쟁과 여행이다.

호머의 작품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호딧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 이야기이다. 기독교 변증가 존 번연의 유명한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은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신앙의 여행이야기이고, <거룩한 전쟁> Holy War는 신자가 일생 동안에 겪는 영적인 전쟁 이야기이다. 타락, 거듭남, 주님과 동행, 사단의 시험, 신앙적인 방황, 마음의 평안, 최후의 승리 등을 다루고 있다.

 

C.S. 루이스는 회심하여 2주 동안 <순례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존 번연의 현대판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가 천국으로 가는 여행이라면,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 Pilgrim's Regress은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는 믿음의 여행이다. 영어 제목을 주목해보면 <순례자의 귀향>Pilgrim's Regress 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와 같이 이야기 방식으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C.S. 루이스는 3차에 걸치는 회심을 경험했다. 그의 회심의 계기는 논리의 회심이 아니라, 상상력의 회심이었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신화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에 눈을 뜨는데 그의 풍성한 상상력의 방향을 기독교 신앙에 돌리게 된다. 여기서 '상상력'이라고 할 때,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본다는 의미에서의 상상력을 말한다. 그의 사상은 이성과 감정의 문제를 다룬다. 이성으로만 치우치거나, 감성으로만 치우치는 결과는 '황무지'이다.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신앙'임을 발견하게 되ㄷㄴㅏ.

 

이 책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이런 풍부한 메타포 때문인데, 최근 그의 회심에 관심을 가지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루이스의 저서 <예기치 않은 기쁨>이 그의 회심을 주제로 다루었다면, <순례자의 귀향>은 다른 접근으로 그의 회심을 다루고 있다. <순례자의 귀향>의 글쓰기 방식이 흥미롭다.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인문학자, 당시 타락한 기독교 사회를 비판했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풍자 형식을 루이스가 사용하고 있다. 나의 신학적 회심에 큰 영향을 주었던 Peter Kreeft교수의 <소크라테스, 예수를 만나다>Socratges Meets Jesus 이 책도 역시 상상력을 이용한 대화의 형식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책이었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이성적,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이성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 <거룩한 전쟁>과 더불어,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에 무한한 가치와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성은 그 시대를 풍미하는 현혹하는 철학을 분별하는데 필요하며, 감성이 없는 이성과 신앙은 메마르므로 감성도 중요한 요소이다. 어디까지나 이성과 감성은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서만 균형을 이루고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순례자의 귀향>에 등장하는  '교회'(Kirk)라는 노파는 볼품없고 옷차림도 남루한 노파이다. 하나님의 며느리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지만, 이 땅에서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 '이성'이 낭떠러지 앞에 도착하는데, 그 낭떠러지를 건너갈 도움을 주는 것이 '교회'였다. 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 가치가 드러난다.

 

신앙의 순례의 목적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이것이 순례자의 귀향의 결론이다. 이성과 신앙, 의심과 믿음의 문제.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했다. 아니,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의지의 반항이다. 루이스는 프로이트에 심취했고 영국이 1940년 독일의 Blitz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성과 낭만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무신론자는 모순의 세계에 산다. 세계를 자기 동의 없이 창조하고 이 땅에 보낸 신에게 화를 낸다.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순례자의 귀향>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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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등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
팀 어시니 지음, 이선영 옮김 / 팬덤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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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갈등관리와 해소에 관한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이다.

실제로 내 삶의 갈등을 대처하고 해결하는 즉각적인 결실들이 나타났다.

나는 갈등을 덮는 편이다. 갈등을 잘 관리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에게는 편견이 있었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갈등을 덮어두려고 했다.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보다는 갈등을 덮어두는 것이 문제가 적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등을 덮어두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갈등을 직면하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1. 내 안에 힘이 생겼다. 감정을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만을 표현하며, 애정어린 조언을 하는 용기를 가졌을 때,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무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2. 갈등을 참고 손해를 감수할 때는 무기력증과 불안과 우울이 엄습해왔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갈등을 해소하는 법을 배워서 사용하자,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 이후에 무기력즈, 불안, 우울이 사라졌다. 이것은 신기하다. 더구나, 상대방이 사과하고 화해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만났다. 오히려 갈등을 묻어두어서 상대가 더욱 고통스러웠다. 갈등을 직면할 때 더욱 친밀하고, 좋은 쪽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서 삶이 개선되었다. 자아가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3. 갈등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안전하고도 구체적인 방법들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4. 갈등을 다루는 나의 유형, 내가 얼마나 갈등 관계속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진단하는 자료들이 많다. 나는 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유형이며, 갈등을 잘 해소하지 못하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갈등 해소 방법들>을 해소하면서, 삶이 충만해지고, 관계가 건강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책의 내용은

1. 갈등 상황에 나타나는 5가지 유형.

2. 갈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유 있는 변명(*)

3. 갈등을 잘 다루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 왜 변해야 하는가?(**)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

4. 사고방식의 차이는 갈등의 시작점이다.

5. 갈등을 일으키는 4가지 의사전달 유형. <의사전달법 파악하기> (***)

6. 화가 난 사람을 대할 때 범하기 쉬운 8가지 실수. 100+1 법칙. 동의하는 1에 100% 지지하기. (***)

7.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동기 유발법: 단호한 태도가 좋다. (**)

8. 갈등 해결은 솔직함에서 시작한다. 과감하게 NO!라고 말하기, 절실한 요구, 경청법

9. 갈등을 다스리는 사람 / 갈등에 휘둘리는 사람. 진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기. 비이성적인 사고를 통제하라. 화를 조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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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부러워하는 중년의 몸만들기 - 서울대병원 몸짱 의사가 밝히는 특급 노하우
김원곤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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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쉽고 내용이 간단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는 욕심이 없고, 간결하고 쉽게 건강 지식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61세의 서울대학병원 의사로서 바쁜 전문인이 몸을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하는 바가 크다.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내 나이 이제 50, 그 동안 건강관리에 소홀히 했었다. 이제라도 몸 만들기에 힘쓰기로 했다.

체지방량, BMI(체질량지수)를 조금만 관리하면 정상이 될텐데, 현재는 과체중이다.

- 근육은 나이가 없다. 근육 운동의 3요소는 운동, 영양, 휴식이다. 운동에 욕심을 내서 '휴식'을 망각하면 안되겠다. 운동 중독도 무서운 것이니,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 운동 전에 워밍업을 하고, 운동 후에 스트레칭을 하라.

- 대근육 먼저, 소근육 나중에 운동하라.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중년의' 몸만들기 책이기 때문이다.

너무 욕심을 내는 것은 위험한데, 이 책은 과도한 욕심이 아니라 중년인 나에게 아주 적절한 동기부여를 주고 있다. 중요한 내용은 파란 글씨체로 밑줄까지 쳐서 핵심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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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묵상 28일 믿음의 글들 327
오지영 지음 / 홍성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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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이 홍성사에서 신간서적을 받았다. 룻기 묵상 28일이었다. 설교자로서 나는 룻기를 성탄을 맞이하는 대림절에 설교본문으로 꼭 다루어보고 싶었다. 이 신간서적을 봄에 받고서 '그래 2015년 대림절 특별새벽기도회 본문은 룻기다!'하고 기분 좋게 정했다. 왜 나는 그토록 룻기를 성탄시기에 다루고 싶어했을까? 구속 이야기, 탄생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장 암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암흑기에 한 줄기 빛처럼 빛나는 보석같은 성경이 룻기이기 때문이다. 룻기는 기근에서 출발하지만 풍부함으로 마치고, 장례식으로 시작하지만 결혼식으로 마치는 소망의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보다도, 전혀 유산을 받을 수 없는 나그네요 외인이며,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성경에서 규정한 모압여인 룻이 주인공이 되는 구원의 이야기는 마치 나의 이야기, 우리의 구원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룻기를 대림절과 성탄의 기간 동안에 충분하게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대림절에 '고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일주일 새벽기도기간에 룻기를 묵상하였다. 


오지영의 룻기는 무엇이 다른가? 성경의 룻기는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오지영은 이것을 28일 묵상으로 만들었다. 다른 설교집과는 차별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드는 생각 중에 하나는 '왜 룻기를 28개로 나누었지, 너무 산만하고 지루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 원어 분석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 오지영의 룻기를 읽어보면서 그 의아함이 해소가 되었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오지영씨가 한국의 친정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의 형식으로 룻기 묵상을 만들었다. 룻은 다름아닌 오지영 자신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룻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이방여인 나그네 룻, 그 사람이 바로 작가 자신이며, 우리 현대인인 것이다. 28일 분량이 룻기를 너무 인위적으로 길게 묵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저자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어서 우리를 룻기의 현장으로 안내해준다. 기근이 들은 베들레헴(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뜻인데 양식이 풍성한 마을이라는 뜻과 현실이 대조가 된다), 모압 땅, 다시 베들레헴의 두 과부의 은신처로, 보아스의 밭으로 이렇게 계속 생생하게 인도해준다. 단순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라, 룻기의 현장속으로 들어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히브리어 설명을 통한 것이 흥미롭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인데, 전혀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가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나오미는 '나의 기쁨'이란 뜻인데 전혀 기쁨이 없이 고통스러운 인생살이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현주소처럼 다가왔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순종이 없고, 복음의 은혜로 기쁨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면의 기쁨이 없는 현실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말론과 기룐의 이름의 뜻도 재미있다. 말론은 '병들다', 기룐은 '다 끝났다' '죽음'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곧 베들레헴 약속의 땅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말은 병듦과 죽음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롯과 룻을 헷갈리면 안된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고, 룻은 모압여인이며 다윗의 할머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가 통치하던 시절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고, 말씀 대로 살지 않는 시대이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시대이다. 그런데 룻기에는 모세 오경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 목적인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에 대한 순종이 잘 나타나 있다. 계대 결혼법, 고엘제도, 희년 등에 대한 말씀을 그대로 구현해가는 것이 이 말씀의 암흑기에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인류의 영적, 역사적 암흑기에 오셨다는 부분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분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말했듯이, 아무리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라도 새벽이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오고 있다.


룻기서에서 또 하나 헷갈리는 부분은 룻의 남편은 말론인가, 기룐인가 하는 것이다. 답은 말룐의 부인이다. 4장 10절에 나온다. 이것이 헷갈리는 이유는 1장에 말론과 기룐, 오르바와 룻의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의 수미상관법으로 말론과 룻이 짝이고, 기룐과 오르바가 짝인 것이다.


룻의 결단, 보아스와의 만남, 보아스의 책임감, 보아스를 통해서 누리는 은혜 등이 흥미롭다.

"내 딸아 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3:18) 이 대목에서 구원을 성취하시고 이루시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성취를 묵상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아무개(4:1)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 하여 그 놀라운 축복을 놓치게 되었다. 왜 아무개가 기업을 무를 기회를 놓치게 되었는지 그 미묘한 부분도 잘 이해하는 것도 흥미롭다.  룻기에서 '기업을 무른다'는 고엘제도는 노예가 되거나,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아 회복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속해 있는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의 값을 치루고 구속하신 놀라운 구원을 예표하고 있다. 여기서 '기업'이라는 한자어는 '회사, 대기업' 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의미한다. 


룻기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속자, 고엘이 되신 그 분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는지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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