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묵상 28일 믿음의 글들 327
오지영 지음 / 홍성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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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이 홍성사에서 신간서적을 받았다. 룻기 묵상 28일이었다. 설교자로서 나는 룻기를 성탄을 맞이하는 대림절에 설교본문으로 꼭 다루어보고 싶었다. 이 신간서적을 봄에 받고서 '그래 2015년 대림절 특별새벽기도회 본문은 룻기다!'하고 기분 좋게 정했다. 왜 나는 그토록 룻기를 성탄시기에 다루고 싶어했을까? 구속 이야기, 탄생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장 암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암흑기에 한 줄기 빛처럼 빛나는 보석같은 성경이 룻기이기 때문이다. 룻기는 기근에서 출발하지만 풍부함으로 마치고, 장례식으로 시작하지만 결혼식으로 마치는 소망의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보다도, 전혀 유산을 받을 수 없는 나그네요 외인이며,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성경에서 규정한 모압여인 룻이 주인공이 되는 구원의 이야기는 마치 나의 이야기, 우리의 구원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룻기를 대림절과 성탄의 기간 동안에 충분하게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대림절에 '고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일주일 새벽기도기간에 룻기를 묵상하였다. 


오지영의 룻기는 무엇이 다른가? 성경의 룻기는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오지영은 이것을 28일 묵상으로 만들었다. 다른 설교집과는 차별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드는 생각 중에 하나는 '왜 룻기를 28개로 나누었지, 너무 산만하고 지루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 원어 분석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 오지영의 룻기를 읽어보면서 그 의아함이 해소가 되었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오지영씨가 한국의 친정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의 형식으로 룻기 묵상을 만들었다. 룻은 다름아닌 오지영 자신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룻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이방여인 나그네 룻, 그 사람이 바로 작가 자신이며, 우리 현대인인 것이다. 28일 분량이 룻기를 너무 인위적으로 길게 묵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저자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어서 우리를 룻기의 현장으로 안내해준다. 기근이 들은 베들레헴(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뜻인데 양식이 풍성한 마을이라는 뜻과 현실이 대조가 된다), 모압 땅, 다시 베들레헴의 두 과부의 은신처로, 보아스의 밭으로 이렇게 계속 생생하게 인도해준다. 단순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라, 룻기의 현장속으로 들어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히브리어 설명을 통한 것이 흥미롭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인데, 전혀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가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나오미는 '나의 기쁨'이란 뜻인데 전혀 기쁨이 없이 고통스러운 인생살이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현주소처럼 다가왔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순종이 없고, 복음의 은혜로 기쁨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면의 기쁨이 없는 현실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말론과 기룐의 이름의 뜻도 재미있다. 말론은 '병들다', 기룐은 '다 끝났다' '죽음'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곧 베들레헴 약속의 땅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말은 병듦과 죽음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롯과 룻을 헷갈리면 안된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고, 룻은 모압여인이며 다윗의 할머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가 통치하던 시절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고, 말씀 대로 살지 않는 시대이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시대이다. 그런데 룻기에는 모세 오경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 목적인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에 대한 순종이 잘 나타나 있다. 계대 결혼법, 고엘제도, 희년 등에 대한 말씀을 그대로 구현해가는 것이 이 말씀의 암흑기에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인류의 영적, 역사적 암흑기에 오셨다는 부분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분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말했듯이, 아무리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라도 새벽이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오고 있다.


룻기서에서 또 하나 헷갈리는 부분은 룻의 남편은 말론인가, 기룐인가 하는 것이다. 답은 말룐의 부인이다. 4장 10절에 나온다. 이것이 헷갈리는 이유는 1장에 말론과 기룐, 오르바와 룻의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의 수미상관법으로 말론과 룻이 짝이고, 기룐과 오르바가 짝인 것이다.


룻의 결단, 보아스와의 만남, 보아스의 책임감, 보아스를 통해서 누리는 은혜 등이 흥미롭다.

"내 딸아 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3:18) 이 대목에서 구원을 성취하시고 이루시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성취를 묵상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아무개(4:1)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 하여 그 놀라운 축복을 놓치게 되었다. 왜 아무개가 기업을 무를 기회를 놓치게 되었는지 그 미묘한 부분도 잘 이해하는 것도 흥미롭다.  룻기에서 '기업을 무른다'는 고엘제도는 노예가 되거나,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아 회복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속해 있는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의 값을 치루고 구속하신 놀라운 구원을 예표하고 있다. 여기서 '기업'이라는 한자어는 '회사, 대기업' 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의미한다. 


룻기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속자, 고엘이 되신 그 분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는지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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