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소년에게 유일한 쉼터였던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장편 소설, 창비 출판
먼저 앞표지. 솔직하게 표지로는 끌리지 않았다. 쓸쓸한 분위기! 가 물씬 풍겼고, 개인 취향으로 인물 표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렇게 좋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소설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냥 개인 취향이 아니었다.
책을 살 때, 뒷표지의 내용도 읽어보지만, 첫 문단이나, 중간 쯤의 한 문단을 읽어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번 위저드 베이커리는 사실, 주위에서 재밌다길래 추천받아서 읽어본 것으로, 뒷표지는 먼저 보지 않고 본문을 읽었는데.
(뜬금없는 해달 등장)
편안하게 빠져 버렸다. 와와와! 가독성 최고였다. 너무 잘 읽혀서 깜짝 놀랐다. 청소년 소설이라 쉽고 짧은 문장으로 썼는지 저자의 의도는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단번에 다 읽어 버렸다. 그것도 무궁화호 입석 까페의 불편한 의자 위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두 시간 만에. 그러고도 세 시간이 남아 한 번 더 읽었다.
향기가 나는 듯한 섬세한 묘사로 소설이 시작된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빵을 먹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빵은 지긋지긋해" 라고 주인공이 말한다. 와. 이 작가 처음부터 뒤통수를 세게 치고 나간다 싶었다. 그 뒤로도 유쾌한 속임수는 계속되었다. 마술이 나올거라 생각은 했지만, 하고도 처음 그 섬세한 묘사에 마음을 뺏겼던 터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주인공인 소년이 자주 들리는 제과점에서 빵의 성분을 묻는 순간, 이 소설 범상치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제과점 남자가 말한 빵의 재료가 "간, 말린 거." 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평범한 십대 청소년처럼 그런 장난을 말끔히 무시하고 가게를 나온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곧장 사건의 후반부가 전개된다. 무언가에 쫓기듯 달려온 소년, 소년이 찾은 곳은 바로 그 빵집이다. 남자는 숨겨달라는 소년에게 오븐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작가는 여기서도 유머를 잊지 않고, 마지막 한 방을 날린다. 물론 소년의 입으로.
"다, 좋, 좋은데 오, 온, 스위, 스, 위치는, 누르지, 마, 마요."
본격적인 소설은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 엄마인 배 선생과 그녀의 딸이 등장하고, 그녀가 소년에게 보인 차갑고도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태도와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들이는 소년이 등장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설움을 소년에게 푸는 새 엄마와, 그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소년의 회피, 결국 현대사회의 가정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 친 부모와 자식간에도 발생하는, 단절.
그 와중에 배 선생인 딸인 무희가 성폭행을 당한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발견자는 소년이었다. 처음엔 다니던 학원의 선생을 조사했지만, 알다시피, 성폭행 사건의 조사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더 괴로울 때가 많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무희는 홧김에, 정말 홧김에, 아니면 나름대로의 증오 표시로, 최후의 범인으로 소년을 지목한다. 소년은 배 선생에게 미친듯이 맞다가 도망을 나왔고, 도착한 곳이 위저드 베이커리, 바로 그 수상한 남자가 있던 빵집이었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와 이어지는 부분이고, 그 뒤로는 이 이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온라인 쇼핑몰의 과자 소개였다.
노 땡큐 사브레 쇼꼴라
정말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고백받았다면? 이걸 대답으로 주세요. 한마디로 '먹고 떨어질 겁니다.
그 뒤로는 이 수상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와, 쇼핑몰, 또 다른 여자 점원과 저런 쿠키를 사서 직접 이용한 고객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만,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들이닥쳐 소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소년에게 선물을 하나 건네는데, 사실 그 선물은 나도 탐나는 것이었다. 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거주하면서 소년은 조금씩 용기를 얻고 성장한다. 가끔 가슴을 찌르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이 느껴진다. 배 선생의 말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돌아간 소년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물론 범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선생은 끝까지 소년의 탓을 하고, 소년은 마지막으로 그 선물을 이용하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결말을 낸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두 갈래 길이었는데, 하나는 현실적인 것이었고, 하나는 무척 동화같은,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책을 읽던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던 엔딩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아 이러지 말았으면, 이 사람 이야기는 더 없나? 그래서 뭐? 이런 경우가 많은데, 구병모 작가는 영리하게 그런 가려움을 과감한 시도로 긁어준 듯했다. 잠시 잡담을 하자면 필자는 RPG 게임을 즐겨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도 두 가지 이상의 엔딩이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튼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유머와 현실 감각, 감동이 적절히 버무려진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끔 이 소년이 너무 현실에 당한 것이 많아서 체념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사실이겠지만, 왜, 현실에서는 밝은 아이도 속이 썩어 문드러진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소설은 개연성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지 않은 듯 했다. 내가 읽은 청소년 소설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리고 아이템! 위저드 베이커리와 재미있는 쿠키들! 물론 에피소드로 활용을 했지만, 이 아이템들과 요리사와 점원을 데리고 환상의 세계로 빠졌어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럼 판타지가 될 법 하지만, 이 정도의 필력이라면 판타지도 설득력있게 잘 쓸 것 같았다. 아쉬웠다. 이렇게 끝나? 뭐 다른 세계 없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 소설. 재밌다. 그렇지만 조금 덜 진지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그런 건 싫어하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이런가 싶기도 했고. 아무튼 재밌게 읽은 만큼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 아이템이 너무 아까웠다. 정말로. 남자의 사정도 설명 했지만, 마법적으로 남자의 세계를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리 포터도 성공했지 않은가! 이렇게 아쉬우니 자세하게 몇 번 더 읽고 혼자 상상해서 써 보기라도 해야겠다.
결론!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집중력을 가져다 준 가독선 좋은 신선하고 기발한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청소년 보다 오히려 대학생이 읽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과 환상이 적절히 버무려진 소설을 읽고 싶다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신작이 나왔던데 사서 읽어 봐야겠다.
잡담 - 저번주에 부산 갔다온 여독이 아직도 풀리지 않습니다. 다섯시간 무궁화호를 탔고,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매일 밤 술을 마셔서, 물론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2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라 쉴틈 없이 놀았더니 몸이, 몸이. 오늘은 빅 픽쳐를 다시 읽고 잘 생각입니다. 케빈에 대하여도 내일 중으로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책들과 함께 행복하자구요! :)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 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욱 빨리 달린다.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구병모 장편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中
+ 이 책과 더불어 추천하고 싶은 책들입니다.
유쾌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싶다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동화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리버 보이,
가독성이 좋은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라면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를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