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아린아린해 > 비가 온다 거기다 지각까지 한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시인 강연회 + 책 후기
갑자기 비가 온다 거기다 지각까지 한다
바람이 분다 지각을 한다 그리고 후기를 날렸다
진심 드러누워서 다시 잘까 하다가 나는 최후의 승자가 될것이다 라고 외치며 다시 쓰는 후기
가는 과정 몽땅 생략. 대충 버스 잘못 타서 내렸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사실 내가 백팩에 노트북과 책 두권과 책 두권만큼 두꺼운 프린트 물과 연습장 하나를 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내가 내리자 마자 비가 미친듯이 쏟아져서 회색옷을 입고 있던 나는 정말 물에 빠진 생쥐꼴로 강연장에 들어섰다는 이야기. 놀란 직원분들과 함께 놀란 상태로 잠시 서 있다가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시작된 강연 이야기.
네이버 프로필 사진을 바꿔주세요
네이버 사진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나는 이병률 시인의 목소리가 굉장히 거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정말 라디오를 라이브로 듣는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필기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우와! 안 보인다!
내 앞에 두명의 여성분이 앉아 있었는데 두 분이 아주 적절하게 사선으로 앉아계셔서 시야 확보가 힘들었던 것. 물론 그 분들에게는 전혀 불만이 없다, 각자 좋은 위치에서 볼 권리가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난 지각까지 했거늘! 그래서 기린처럼 허리와 목을 곧게 펴고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들었다. 네이버 사진보다 훨씬 깔끔하고 훨씬 잘생겼다. 진심으로. 하아. 잠시 이대로 잠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주옥같은 말을 내 뱉고 있었기에 잠 드는 것은 집에 가서 하기로 결정.
당신은 따뜻한 사람인가요?
강연을 들으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을 써야한다는 그의 말과, 할머니와 어머니 에피소드를 들으며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거기엔 그의 목소리가 한 몫 단단히 했다. 문득 목소리 좋은 사람이 이상형입니다 라고 말하는 여자들의 심정을 아주 잠깐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사람을 피하거나 무언가를 피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는 조금은 반발심이 일었다. 사실 나는 꽤 많은 것을 피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나는 내 자신을 좀 더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많은 도전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됐든 간에 그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결국 나의 생각이다. 물론 피하기만 하면 그 본질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모든 걸 알아야 하는가, 조금은 피해가며, 내가 행복하다고 믿는 행복을 즐기는 것도 어쩌면 사람의 진정한 인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만의 독특한 문장을 쓰고 싶다, 나는 이 정도 밖에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롭다 등등의 고민을 들은 이병률 시인이 말했다. 쉬운 것부터 간단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라고. 사실 기본이 제일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비유나 은유를 천천히 가볍게 사용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더욱더 단단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많이 쓰고 읽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필요하고. 글쓰기 특강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어떤 이는 정말 기술적인 것을 원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을 다루는 그런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 다 읽지 못한 그의 책을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읽겠노라 다짐했다.
위로해 주세요
나는 꽤 지쳐있었다. 말했듯이 물에 빠진 생쥐였고,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말랐지만,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말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싸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차분하다'라는 평을 받는 내 목소리로 아주 '차분하게' 위로에 관한 말 한 마디를 적어주세요 라고 말할 계획이었으나, 입을 데는 순간 내 계획은 와장창 무너졌다. 차분하다고 생각했던 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의 톤은 옥상과 지하실을 넘나 들었다. 이야. 말하는 동시에 속으로는 하이킥을 날렸다.
가훈?
많이 아프세요, 를 먼저 쓰고 책으로를 나중에 써 주었는데, 다른 사람의 후기를 보니 많이 아프세요, 가 가훈이란다. 나는 가훈 같은 것은 단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집에서 자랐는데. 가훈 부터 이렇게 촉촉하다니. 당신,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닙니까 라고 따지고 싶었다. 왠지 부러웠기 때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문학소년으로 태어난 것만 같아서. 아, 그런데 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어준 걸 보고 잠시 질투. 그러나 책으로가 덧붙여져 있으니 스스로를 위로하자고 다시 나를 다독였다. 사실 싸인회를 할 즈음에 이병률 시인은 무척 지쳐보였고, 그럼에도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고 원하는 말을 써주려고 하고 했다. 그 모습이 정말 프로 같아서 멋있었다. 아름답고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일이지만, 그 글을 읽어주는 독자를 소중히 대하는 것 또한 작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쥐가 빠져 죽겠네
마침내 집에 가는 시간. 이야. 비가 어찌나 시원하게 내리는지. 나는 잠시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도 비를 맞아야 겠지. 택시를 타야 할 것 같은데 쫄딱 젖은 나를 태워줄까? 아닐 것 같은데 그럼 어쩌지? 마음씨 좋아보이는 여자에게 빌붙어서 우산을 써볼까? 그런데 혼자 온 사람은 별로 없어보이던데? 등등의 생각을 하며 문가에 서있는 순간 다가온 구원의 손길. 뿔테를 낀 문학동네 직원분께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 순간 정말 당신의 등 뒤에선 오오라가 비쳤습니다, 어찌됐든 우산을 내밀었고, 머뭇거리는 내게 우산 없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며 부담 가지지 말고 받으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남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우산을 받은 것 같다. 돌 조심하라는 말에 이미 한 번 넘어졌다고 경쾌하게 대답하고 집으로 향했다. 생쥐가 빠져 죽을 위기를 피해서 나는 무척 행복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다가 창작촌 입구의 박범신 작가의 이름을 보고, 우오 포스! 라고 외치며 제 갈길을 갔다. 이병률 시인과 문학동네와 알라딘의 초대 덕분에 이런 곳도 와보고, 역시 세상은 살만 하구나 라고 혼자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자고 싶었으나 책을 읽고 싶었다
드디어 책 이야기 인데 우선 생각한 것보다 세상을 꽤 객관적으로? 음, 뭐랄까 군더더기 없이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연을 들을 때 목소리 때문인지 무척 따뜻하고 모든 사물을 따뜻하게만 볼 것 같았는데, 굳이 그렇지 만은 않았다. 이 느낌이 궁금하다면 일단 책을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
또 하나 내가 느낀 것은 책 전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흐른 다는 것이었다. 어느 곳에 있든 그 사랑이 현재나 과거나 혼자하거나 동물에 대한 것이거나 장소에 대한 것이거나 그러니까 모든 것에 사랑이 흐른다는 것을 이 작가는 알고 그것을 녹여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5#의 비눗방울 이야기는 원하는 것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 그럼에도 계속 원하는 그것,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 외에도 통용되는 그러니까 때론 맘대로 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에피소드였고, 강연회 도중에 사실 그 의도가 아니었는데 라고 설명해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어찌됐든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15#의 목 뒤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굉장히 먹먹하면서도 사실 그렇게까지 그를 잊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자세한 걸 모두 풀면 재미없으니 이 정도로만. 그 외에도 아이의 작은 손과 내 손이 겹쳐질 때의 그 뜨뜻한 감정, 남들이 비웃어도 조금은 바보같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작가의 목소리, 토끼를 만나 그들을 위해 그들만의 시간을 내어주고, 그러나 사실은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쓰다 다시 느껴진 따뜻한 체온에 헐레벌떡 그들에게 달려가는 작가의 모습, 비행기 창문으로 자꾸만 따라오는 달의 모습 등은 이래서 사람들이 산문집을 읽는구나 싶게 만들어주었다. 이제야 밝히는 것이지만 나는 산문집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그 묘미를 조금을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강연회에서 색에 관한 이야기가 책에 들어 있다길래 꽤나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부분은 내가 공감하지 못해서 그런지 기대가 커서 그런지 내 기대를 만족시켜주진 못했다. 그러나 그 외의 것들은 정말 그 곳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고, 때론 내 감성을 찌르며 그냥 울거나 웃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무척 몹시 아주 많이 좋았다.
후기를 다 날려서 다시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쓰고 나니 또 이만큼 써지는 것이 신기하다.
사실 한 줄도 못 쓰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역시 인간은 의지의 동물이다. 이젠 자야겠다. 눈을 감으면 나도 파리의 어느 방에 누워 있기를, 떨어져 있는 도리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를, 허름해 보이는 가게에서 최고의 음식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이제는 부디 잠들기를 바라며, 글을 끝마친다. 여행이 가고 싶다.
팔월 말에는 부산이라도 갔다와야 겠다.
잠이 온다 당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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