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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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만 작가의 소설 '돼지의 피'는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답게 전형적인 미스터리 하드 보일드 작품입니다. 한강 아라뱃길에 시신을 유기하는 연쇄 토막 살인범이 등장하며, 이와 얽힌 주인공 준우의 고군분투가 소설 끝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준우는 살인 사건으로 모친을 잃은 피해자이면서도 사적 복수를 감행코자 하는 예비 가해자 격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단순히 살인범 한 명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또 다른 살인범이 등장하고 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 또한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합니다. 이제는 추리 소설에 보편화된 이중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나 교묘하게 짜여져 있어 범인이 짐작은 가지만 이를 확인해 가는 과정 또한 쏠쏠한 흥미거리죠..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최우수상 수상작답게 서사 자체는 나무랄데 없이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토막 살인이 주된 살인 방법이니만큼 꽤나 하드보일드 적인 요소 또한 많이 등장합니다. 범인과 형사, 그리고 평범한 젊은이로 보였던 준우의 머리 싸움은 결국 양자간 폭력적 충돌로 마무리 되죠.. 강에 버려진 토막 사체 뿐 아니라 절단된 발목, 소각로에서의 시신 소각 등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묘사도 많습니다.

2대에 걸쳐 범죄가 일어나고 이에 대한 은폐가 역시나 대를 이어 진행된다는 내용은 최초 살인의 이유를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이 또한 소설적 재미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잔인한 측면이 많았던 소설이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 보면 악인들 간의 싸움을 그려낸 피카레스크물 성격도 강합니다.

각각의 캐릭터 들이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는 소설 말미에서야 밝혀지기에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소설이죠. 모처럼 재미나게 한국 작가의 추리물을 접했던 듯 합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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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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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은 원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 소설의 제목입니다. 노년의 여성 탐정인 미스 마플이 주인공으로 나와 사건을 해결해 가는 내용이죠. 여성의 지성을 폄하하던 당시 상황에서 획기적인 캐릭터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명의 이 소설집은 패미니즘을 처음부터 앞세운 책입니다. 한국 출판 시장에도 잘 알려진 마거릿 애트우드 등 모두 15명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하게 차 있습니다. 소설 제목 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모두 여성을 가리키는 '멸칭'을 내세워 오히려 이를 반어법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 주인공 들이 등장합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퀴어물도 당연히 있고, 여성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담은 단편 또한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서사에서 일반적인 남성을 비하하거나 미러링하는 내용은 좀체 찾을 수 없습니다. 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하대하는 일부 남성 캐릭터 들에 대한 은유적 비판은 존재합니다만...

포르노 배우라든지 여성 선지자 같은 다소 이질적인 캐릭터 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내용까지 이질적이진 않습니다. 한편 한편의 완결도가 꽤 괜찮고 생각할꺼리를 주는 소설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은근히 유머스런 부분과 풍자도 많이 깔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던 소설 들입니다.


누군가는 성적 역차별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인류가 존재한 이후 여성은 대부분 차별받는 존재로 자리잡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고, 상위 직급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것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실재하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데이트 폭력이나 치정 살인의 피해자도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죠. 근력에서 나오는 신체적 특성의 차이야 인정할 수 있다 하겠지만 여타의 다른 능력에 대해서까지 차별을 두는 것은 남자인 저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패미니즘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아직 가야할 길이 먼 주제임은 틀림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여성 작가들의 시각에서 오랜만에 남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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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 이성적인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믿게 되는 이유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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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빌리프... 그릇된 것을 믿는 이들, 즉 오신자 들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사회심리학 서적입니다. 듀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석학 댄 애리얼리 교수에 의해 집필되었습니다.

저자는 코비드19 시기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온 음모론의 대표적인 희생자였습니다. 백신음모론자부터 시작해서 일루미나티 음모론자, 심지어 트럼프 지지자 등 온갖 미스빌리프 들에게서 그는 한마디로 '찍힌'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풍문이 쉴 새 없이 생산, 재생산되었고 가까운 이들조차 이를 믿는 경향을 보이며 그를 비난했죠.

나름 해명과 반론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오히려 음모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습니다.

저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하기 보다는 미스빌리프 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탄생하고 확대 재생산되는지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하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대응을 시작한 것이죠.

오신자 들의 다양한 사례 및 그들의 무지, 확증편향, 인지부조화 등을 다양하게 지적합니다. 워낙 객관적이면서도 예리한 그의 지적에 과연 제대로 응수할 수 있는 미스빌리프 들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오신자 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이 한번 내린 결정을 반복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될 이유이고 어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죠.

며칠 전 광화문을 지나다 어느 개신교 단체의 트럼프 지지 집회를 잠시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잠깐 그들의 논리를 들어보니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유는 간단했습니다.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사유였죠. 그가 거짓말과 성희롱을 일삼고, 우방국가에 지나친 책임을 지우고,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총기 보유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점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더군요.. 그들에겐 트럼프의 그런 결점조차도 언론이나 반대파의 조작이라 느껴질 것입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 앞에 그 어떤 증거를 내세우더라도 그들은 결코 의견을 바꾸지 않습니다. 나라를 팔아 먹더라도 나는 XXX를 지지한다던 어떤 유권자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결국 나 자신만이라도 오신자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노력하는 수 밖에요.. 이 책은 더 널리 읽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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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훔친 남자
양지윤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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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훔치는 남자'는 양지윤 작가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모두 8편의 개성 강하고 잘 만들어진 단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일단 그녀의 단편에 나오는 이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 또는 그녀로 표현됩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상 들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사의 87 그루 나무 화분 전체를 똑같이 생긴 인조 나무로 바꿔 치기해서 자신의 집에서 돌보는 남자라든지, 시도 때도 없이 박수를 치고 다니는 남자라든지, 수조에 사람을 가두고 키우는 여자라든지 사실 소설 상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 들이 이 소설집의 주인공 들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상은 노숙자로 살다 미술에 대한 재능을 발휘하여 세계적 위상을 갖는 화가가 되는가 싶더니만 다시 노숙자로 돌아오는 뱅크럽시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상태로 느껴지던 괴이하기까지 한 인물 들은 소설이 끝나갈 때 즈음엔 바로 나, 우리가 됩니다. 극히 공감할 수 있는 인물상으로 바뀐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피엔딩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슴 아픈 엇갈림이나 주인공의 소멸로 끝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작가의 소설들이 그저 그런 이야기의 묶음이 아니란 반증이기도 하죠. 그야말로 독특하지만 꽤나 잘 읽히는 소설 들입니다.

어쨌든 기존에 읽어 왔던 소설 들의 흐름과는 꽤나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그 쓸모와 효용성으로 평가 받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 범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괴짜로 낙인 찍히게 되죠.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물 들입니다. 양지윤 작가의 소설이 색다르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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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New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이강혁 지음 / 가람기획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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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19 펜데믹 사태가 진정되어 가던 2021년 11월 하늘길이 뚫리고 처음 갔던 출장과 여행을 겸한 20일 간의 외유가 바로 스페인-포르투갈이었습니다. 격리는 없어졌지만 오갈 때 모두 백신증명서가 필요했고 PCR 검사 후 음성이 확인되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기였죠.

스페인 마드리드-바르셀로나-세비야 등을 축으로 하여 10여개 도시 곳곳을 렌트카로 돌았습니다. 한반도의 2.5배 크기라는 것을 실감했죠. 도시마다 랜드마크처럼 서있는 대성당들, 그리고 중동 어느 국가에 온 듯 한 착각을 일으킨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등등.. 카톨릭과 이슬람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전통을 가진 나라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서기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전환점이 된 한 해입니다. 800여 년 간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했던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을 식민지화 하는 등 통일 국가로서의 스페인의 국운이 본격적으로 뻗치기 시작한 시점이죠.

물론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 차원을 넘어선 말살 등의 제국주의 정책은 지금도 비판 받는 점입니다. 이후 새롭게 떠오른 제국주의 강국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대부분의 식민지를 잃은 스페인은 합법적 선거로 집권한 인민전선과 이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킨 극우파 프랑코 세력과의 내전을 통해 더욱 큰 타격을 입습니다.

프랑코는 국민에 대한 탄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었고 수십 년간의 독재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외면 받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은 과거의 영화를 모두 잃어버린 채 유럽에서도 늘상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3류 국가로 전락하게 되죠. 우리가 극우 독재 체제를 결코 용납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국가입니다. 찬란했던 과거 역사가 남겨 놓은 관광 자원 또한 상당하고 민주화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주권 의식 또한 높아진 상태입니다. 과연 스페인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저부터가 궁금해집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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