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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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54년에 조셉 프랭클을 만나는 랄프 로렌‘이 존재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1954년, 그 해는 마릴린 먼로가 한국을 첫 방문한 해이고,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해이며,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이다.
그러나 주인공 ‘종수‘에게 1954년은 티모시 스펜서와 조셉 프랭클이 처음 만난 해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생활을 하고 있던 종수는 그의 지도 교수인 미츠오 기쿠 박사에게 하루 아침에 잘리고(잘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만다.
종수는 본인의 지도 교수에게 떠밀려 퇴학과 같은 휴학을 한 후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혼자 술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잠긴 서랍 속에서 옛 친구 ‘수영‘의 청첩장을 발견하게 되고, 수영과의 기억을 더듬는다.
‘랄프 로렌‘
바로 그 폴로 랄프 로렌 브랜드의 창시자, 랄프 로렌이 그와 그녀의 연결고리다.
그렇게 맞닥뜨리게 된 ‘랄프 로렌‘을 마치 탈출구라도 발견한냥 종수는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표지가 너무 예뻤고,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끌리듯 책을 펼쳤고 맞닥뜨린 건 ‘난해함‘이었다.
분명 한국 문학 작품인데 영미소설을 번역한 듯한 문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붙어있는 부연설명, 시나리오가 아닐까 의심케 하는 숱한 괄호 안의 상황 설명.
한국 문학을 읽을 땐 간결한 문체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문장이 너무 ‘쓸데없이‘ 길었으며, 틀린 문장부호도 거슬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덮어버리고 다른 책을 읽었을텐데, 왠지 지금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주인공 종수가 레이첼 잭슨 여사와 섀넌 헤이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책 읽는 속도가 더뎠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왜 이렇게 랄프 로렌에 집착하는지, 도대체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조금도 안되는거다.
근데 딱 중반부, 잭슨 여사와 섀넌을 만난 후 부터는 장황한 문체도 익숙했고 잘 어우러진다 싶더니 책 읽는데 속도도 붙기 시작했다.
초반에 여기 저기 펼쳐져 있던게 후반부로 갈수록 제 자리를 찾아가고 살이 붙기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땐 이게 뭐라고, 별로 드라마틱한 내용 같지도 않은데 따뜻하고 슬펐다.
아마 나도 시간이 더 흘러 종수가 수영의 청첩장을 발견하듯 또 다시 한번 이 책을 ‘발견‘할 것 같다.
(초반엔 그렇게 거슬리고 낯설던 문체가 지금은 내가 쓰고 있는 지경이라니 나도 모르는 새 빨려들어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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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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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한국, 82년생 김지영씨로 보여주다.


김지영씨는 1982년생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2남 1녀의 둘째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고 평범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을 다녔고, 평범한 정대현씨를 만나 정지원양을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런 30대 여성이다.
김지영씨는 어느 날 부터 그녀가 아닌 다른 여성인 듯 말을 하기 시작한다.
김지영씨의 엄마도 되었다가, 대학교 동아리 선배도 되었다가.
그런 그녀를 남편인 정대현씨가 당신이 많이 힘들어보여서 병원 상담을 예약했다고, 그런 그녀는 요즘 우울했는데 고맙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의 내용도 별로 특별할게 없다.
더할 나위 없이 담담한 문체로 시작해 담담하게 끝맺는다.


사실, 나는 요근래 급 부상한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혐오‘라는 듣기도 싫고 입에 담기도 싫은 말로 성별을 나누고, 물어뜯기 바쁜 요즘 세상이 너무 싫다.
‘김치녀‘ ‘된장녀‘ 등 말같지도 않은 단어를 쓰는 일부 남성들에게 ‘한남‘이라는 또 말같지도 않은 단어로 공격 하는 일부 여성들.
내겐 양쪽 다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서 익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 키보드만 두드려대는 악플러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이렇게 공격적인게 아닌데,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이중잣대를 가지지 않았는데.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SNS에 올라오는 ‘페미니스트‘인 척 하는 프로불편러들을 보자니 짜증이 났다.
물론 게중에 옳은 비판도 많고, 정말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도 많았다.
하지만 논리 적인 척, 깨어있는 척 하며 죄다 모순되는 말 투성이인 글에, 그런 자기 말에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너 같은 여자가 있으니 우리나라 여권이 이정도라며‘ 본인이 혐오한다는 꼰대와 다를 바 없는 반응.
진절머리 날 정도였는데, 이 책은 다르다.
그 흔한 ‘혐오‘ 없이 대한민국 여성들이 당하는 불합리, 부조리를 집어내준다.
지극히 평범한 82년생 김지영씨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슬픈 장면이라고는 딱히 없는데 슬프다, 지독하게도 슬퍼 눈물이 난다.
마지막까지 이 책은 소설책이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카타르시스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수작이다, 정말 엄청난 수작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책.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 세상의 오미숙씨, 김은영씨, 김지영씨, 정지원양이 꼭 읽었으면, 조그마한 위로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이름 한 번 나오지 않았던 김지영씨의 아버지, 남동생, 그리고 정대현씨도 꼭, 꼭 읽었으면.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라도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올해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과 함께 꼭 챙겨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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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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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트릭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모리사키 도모미.
그녀가 떠난 후 모리사키 부부의 초청으로 모리사키가의 별장에 지인들이 모인다.
그렇게 함께 휴가를 즐기려던 찰나, 갑자기 들이닥친 두명의 괴한.
은행 강도범들이 미리 알아두었던 모리사키의 별장을 은신처로 삼았던 것.
그렇게 강도들의 인질이 되어 감금 생활이 시작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죽음에 모두들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이 한국에 첫 출간 됐을 때 서점에서 잠깐만 읽어보자 했던게, 결국엔 서점에 자리를 잡고 한 권을 다 읽었더랬다.
그 때 읽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작가의 트릭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몇년 후, 선물로 받게 되었는데 결말이 기억 안 나 다시 책을 펼쳤는데, 3막에 접어들어 ‘아, 이거!‘ 하고 기억이 나버렸다.
그래도 펼친 김에 다 읽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읽어내려갔는데 웬걸, 읽으면 읽을 수록 너무 재밌다!
범인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어서인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 덕에 히가시노의 문체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히가시노 덕후라 그의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이 기회에 한 번씩 더 읽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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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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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어느 날 바 ‘양하‘의 직원 신스케는 습격을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가해자를 찾기 위해 신스케를 찾아 온 형사들,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은 신스케.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온 신스케는 형사들로부터 본인이 1년 반 전 저지른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성 ‘미나에‘의 남편 ‘레이지‘가 자신을 습격한 범인임을 듣게 된다.
그러나 그 범인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
그 교통사고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신스케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알음알음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 둘 풀어나가고, 사건에 연루된 모두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그 흔한 목차도 없이 프롤로그가 바로 시작된다.
엄청난 흡인력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읽는 히가시노의 작품이었고, 술술 넘어가는 책장 덕에 434p나 되는 꽤 두꺼운 작품임에도 수월하게 느껴졌다.
프롤로그엔 ‘교통사고‘ 피해자인 미나에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오는데 사고가 나는 시점부터는 슬로우 모션인 듯 느릿한 서술에 내 상상도 함께 슬로우 모션이 된다.
그 후에 신스케의 관점으로 이야기들이 서술되는데 중반까지는 정말 오리무중이다.
중후반부에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면서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루리코‘의 정체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 섬뜩했다.
오컬트적인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긴밀하게 잘 풀어낸 덕에 의문점을 제기할 것이 없었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느낌) 책장을 덮고 나니 신스케의 여자친구였던 ‘나루미‘는 어떻게 되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나루미의 마지막을 본 사람인 에지마가 그렇게 돼버렸으니 모를 수 밖에 없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너무 너무 많이 읽어서 질린다고 한동안 멀리했던 나를 반성하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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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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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범벅, 하지만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논픽션


고다 마야라는 여고생의 전화로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이 떠오른다.
가해자로 지목됐으나 동시에 피해자인 아쓰코.
그 둘을 감금하고 학대했다는 요시오.
마야와 아쓰코가 감금됐었던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에서 실현된 지옥도를 엄청난 묘사로 몰아쳐 풀어 나간다.


이 책에서 주가 되는 관점이 세가지가 있다.
요코우치 신고의 관점, 시마모토 고키 형사의 관점, 기와다 에이이치 주임의 관점.
엄청나게 나오는 이름때문에, 그것도 일본 이름은 6~7자나 되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필기까지 해가며 읽었다.
술술 재미있게 읽히던 초반과 달리 책의 1/3 지점이 되었을 땐 정말 그만 읽고 싶었다.
이렇게 잔인함을 넘어서 역겹고 더러운 묘사는 처음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따위 생각을 할 수 있지?‘
‘미친거 아니야? 생각이 없어? 왜 저러는거야?‘
등등 분노가 치미는 대목도 많았다.
그저 픽션이었다면 ‘이따위 역겨운 망상으로 글을 쓰다니‘하며 덮었을테지만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기에 궁금했다.
끝을 보고 싶었고 그 결말이 권선징악, 너무 뻔하지만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권선징악이길 바랐다.
가독성은 나쁘지 않았기에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었고 도를 넘어서는 역겨운 행동과 생각들이 힘들었지만 다 읽어냈다.
말미에 있다는 반전은 사실 내겐 그리 놀랍지 않았다.
‘겨우 이런게 반전이라니, 놀랍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땐 당황했다.
‘잠깐만...? 이건 아니지... 그래서...? 어쩌라고. 인간은 언제나 짐승이 될 수 있으니 경각심을 주는거야? 미쳤어? 요시오 같은 인물이 이 책을 읽고 자아 성찰이라도 하길 바라는건가? 아님 요시오는 어디든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의 생각들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책을 덮고 나서 너무 화가 났고 모티브가 되었다던 실제 사건을 찾아봤는데 학대나 살인 과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비슷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읽는 동안 이토록 사람을 역겹게 해놓고 이렇게 흐지부지 끝내면 어쩌란건지.
타인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그 이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남의 일에 관심은 많으면서 관여는 하지 않는 것.
어찌보면 좋은 것일지라도 이게 도가 지나쳐서 너무 화가 났다.
수법이 너무 경악스러워 말이 되냐 싶다가도 일제 강점기, 우리 선조들에게 행했던 만행을 생각하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수성이 아닐까 싶다.
요즘말로는 종특이라고 하나? 아무튼, 읽는 내내 역겨웠고 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났다.
그럼에도 별점이 낮지 않은건 그냥 소설 작품으로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은 가독성도 좋았고 구성도 좋았다.
작가만의 문체라고 생각한다면 그 디테일한 묘사의 서술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당분간 일본 추리 소설은 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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