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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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_문학과지성사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끝과 시작, 전염의 충격, 다시 만난 세계 이렇게 세 가지 목차로 나눠져있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시 만난 세계의 소설들이 좋았다. 그 중 가장 획기적인 기획으로 시선을 잡아끈 배명훈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2세기의 역사학도가 연구를 위해 2020년 전후를 되돌아보는 게 이 소설의 지배적인 줄거리다. 독특했던 지점은 소설에서 파열음과 경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보다 문장을 읽는 데에 어려움이 없어서 놀랐다.) 팬데믹 이후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는 생활 속에서 침을 튀기며 발음하는 거센소리나 된소리가 불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언어의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의 ‘나’는 격리실습실에 갇혀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은 채 연구를 하지만, 어느날 배우 서한지를 실습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나’는 결국 서한지를 사랑하게 되는데, 사랑하게 된 이유도, 전하고 싶은 진심도 전부 ‘파열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마음이다. ‘차카타파의 열망’은 인간과 인간 간의 심리적 거리이자 온기이며, 소통인 것이다. 미래에서 현재를 내다보는 일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가까운 시간에 나타나는 것들을 살피게 해 준다. 지금, 여기는 얼마나 온기 있는가 묻는다면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가까운 미래 또한 그러할 것이라 예상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온기나 연대에 대한 희망이 존재했다.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살고 싶게 하는 것이 작가들마다 같은 결의 것이라는 게 신기했다.

✔️ 올해까지 도서판매수익금의 5%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코로나19지원금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이런 것까지 따숩다.

✔️ 배치해둔 소설을 거꾸로 읽었다면 더 몰입도 있고 체력을 잘 분배한 독서가 가능했을 것 같다. 앞의 두 작품이 무겁게 느껴져서 뒤로 갈수록 마음가짐이 게을러졌고, <벌레 폭풍>이 주인공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화나 청소년 소설 같은 느낌이 있어서 먼저 읽었다면 더 빨리 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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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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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 없는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전시·보존하는 박물관이 있다. 화자인 는 어떤 노파에게 고용되어 노파가 사는 마을에서 죽은 사람의 유품을 모아 전시하는 침묵 박물관을 만들게 된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품은 죽은 사람의 유가족이 골라 증여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가장 가까웠던 물건을 훔치는 방식으로 수집된다. 나는 소설의 중반부까지 오면서 이 방식 이외에 그로테스크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 그로테스크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 이름 없음도 침묵의 한 갈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노파, 소녀, , 정원사, 가정부, 형사들 모두 직업이나 나이에 관한 호칭이 즉 이름이다. 죽은 사람들의 정체성은 지켜주고자 하면서 정작 각자의 이름이나 이야기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가장 이상한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처럼 침묵 박물관이나, 겨울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여는 울음 축제’. 세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노파의 달력과 같은 소재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이상함을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작가의 탁월한 묘사 능력 덕택에 계절감이나 날씨뿐 아니라 고조되는 긴장감이나 의 심리 상태도 잘 전달이 되었다.

 

이상한 것 투성이인 이 세계에서 오히려 교훈적인 부분이 많았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 자체는 의미 있지만, 그 방식이 어딘가 강압적이고 범법 행위라면 그것은 용인 가능한가, 침묵을 전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와 상징성이 있는가, 와 같은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마구 떠올랐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반전 요소, 인물들의 입체성 또한 이 책의 매력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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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단지의 뜻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을 자른다는 의미였다.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손가락을 잘라 죽음을 전시하는 연쇄살인범은 날짜나 죽은 사람들에 대한 패턴을 찾기 어려워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전국적으로 떠들썩한 이 살인사건을 지켜보던 주인공 장영민은 온갖 연쇄살인범에 관한 뉴스 기사부터 영화 등을 찾아보며, 문득 살인범의 패턴을 습득하게 된다. 이 패턴을 찾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해서 이 부분에서 가장 몰입하여 읽었기 때문에 부러 패턴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되게 술술 읽히긴 한데 이런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책 뒷부분의 작품해설의 도움을 받아 왜 9명의 죽음으로 책이 끝나버리는지 알 수 있었다. ‘9는 끝의 예고이며,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마지막 숫자이고 10은 곧 0이기 때문에라고 해석한 것을 읽고 나니 새삼 소름이 돋았다. 장르적인 특성 탓도 있겠지만 작가님이 촘촘하게 구성해놓은 전체 그림을 보고 나면 작품의 의미가 배가 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구성적인 면에서 더 치밀한 소설이었다.

 

장영민이 찾은 패턴의 패턴을 읽어내려고 하다 보면, 어느샌가 살인이라는 행위의 시작이 해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 다른 원인과 양상으로 시작되었을 해치려는 마음이 결과적으로 살인까지 닿느냐 아니냐일 뿐이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품고 살아가는 적의와 닮아있다는 걸 말이다. 이 소설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은 총 셋인데, 한 인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살인의 동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을 설득한다기보다는 납득 가능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살인이라는 것의 잔혹성에 대해 그린다. 이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작가의 그런 능력에 내내 감탄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소설 속의 세상처럼 모두 살인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오싹한 소설이었다.

숫자와 차트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빨강은 피도 장미도 정열도 사랑도 아닌 오직 수익이다. 파랑이 바다도 하늘도 희망도 우울도 아닌 오직 손실인 것처럼. - P18

신비로운 결속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연인에게 그런 대답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흠결까지 사랑하는 것과 흠결을 사랑하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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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퓨즈만이 희망이다_한겨레출판

확실하고 명쾌하진 않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대답들.

 

에세이를 굉장히 오랜만에 읽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에세이치고는 무거운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이 오래도록 외면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이야기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더 불완전한 부분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는 책이다. 많은 시사와 그에 대한 논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끊어지는 퓨즈들을 그려내기 때문에 머릿속과 마음이 동시에 북적거렸다.

퓨즈란 과전류가 흐르면 제일 먼저 끊어져 전기 장치를 보호하고 합선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는 장치(332)’. 이 책에 실린 글 <퓨즈만이 희망이다>에서는 여러 과학자와 철학자 등을 말을 빌려 퓨즈만이 희망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저자의 해결책보다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 더 컸는데, 코로나가 장기화됨에 따라 내가 너무 죽음에 무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와는 달리 어느 순간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이 매일 숫자로 확인하는 행위가 되어버리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으로 발현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퓨즈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퓨즈가 끊어지는 것을 알고도 외면했던 걸까, 퓨즈를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고민에서 고민으로 이어졌다.

 

많은 생각을 불러온 다른 글은 <사랑은 없다>였다. 나는 ‘1장 성찰: 우리가 놓친 것들이 인상깊었는데, 그 중 없다로 이어지는 에세이 시리즈들이 다 좋았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부분에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어쨌든 <사랑은 없다>에서 왜 사랑이 없는지 통계를 통해 알려주며, “나쁜 것은 늘 재빨리 국경을 넘는다.”라고 이야기할 때 소름이 돋았다. 내가 너무 쉽게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실은 왜 사랑이 아닌지, 사랑이 있다면 이럴 리 없다고 이야기할 때는 울컥했다.

 

의대 교수인 저자가 건강과 관련된 정책과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며, ‘건강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까지 폭넓게 이야기하는 이 에세이집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코로나 시대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 시점에서 출판한 것도 적절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제야 드러나는 약자들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인 것도 적절했다. 일시정지된 세상에서 무엇이 정말로 취약하고 어디가 중심이었는지 깨우치게 해 준 책이었다.

 

책속의 한줄

(28) 늙는 것은 젊음을 잃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이다. 인형 안에 인형이 있고, 그 안에 또 작은 인형이 자리하고 있는 마트료시카라는 러시아 목각 인형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죽음이 삶의 결손이 아니라 축적인 것처럼 노년은 청춘의 결손이 아니라 그 모든 지나간 삶을 품는 것이다.

 

(336) 위기의 시기에 퓨즈처럼 가장 먼저 죽는 이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이들은 주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면 제일 먼저 붓는 편도이고, “가장 먼저, 가장 늦게까지 아픈 시인(詩人)”이며, 마침내 인류 생존의 해법을 간직한 이들이다. 그래서인가?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픈 곳이 중심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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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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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늘 슬프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이별은 슬프다. 이야기의 초입에서부터 할머니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나’와 ‘할머니’의 이별을 소설 속의 ‘나’처럼 오래도록 소화해내야만 했다.
대학생인 ‘나’는 엄마의 일방적인 권유로 할머니의 집에서 몇 개월간 지내게 된다. 엄마의 독단적인 선택이 시작이라는 것 이외에 ‘나’는 할머니와 죽이 잘 맞는 편이었고, 할머니의 세월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른하고도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 무해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할머니의 잔기침 소리가 ‘나’의 귀에 거슬리지만, 할머니도 엄마도 알려주지 않는 할머니의 병명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곁에 머무르는 손녀가 할머니, 엄마, 자신으로 이어지는 3대 각각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 소설’이다. 기존의 모녀 서사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이 이야기가 불평등이랄지 갈등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대에서 오는 차이와 개인 각각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이에 대해 인물들이 속 시원히 드러내지 않는 데다가 서로를 명확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서로를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가스라이팅이랄지, 가부장제랄지, 대리효도랄지 이런 말들로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친밀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인물들을 방식으로 읽어내고 싶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친애하고, 또 친애한다는 뜻, 즉 대상에 대한 친애의 정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주인공 ‘나’의 엄마인 ‘현옥’과 워커홀릭 엄마 대신 ‘나’를 사랑으로 돌봐준 할머니인 ‘예분’, 두 존재 모두에 해당하는 형용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가 훗날 아이를 임신하며 가지게 된 모성애에 대해 곰곰이 뜯어보며 ‘나’의 엄마가 그러지 않음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납득한다. 궁극적으로 유약하고 곰살궂은 인간들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음을, 사랑이라는 것은 비교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소설은 알려준다. 먼 훗날 홀로 됨을 두려워할 마음들에게 이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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