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단지의 뜻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을 자른다’는 의미였다.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손가락을 잘라 ‘죽음’을 전시하는 연쇄살인범은 날짜나 죽은 사람들에 대한 패턴을 찾기 어려워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전국적으로 떠들썩한 이 살인사건을 지켜보던 주인공 장영민은 온갖 연쇄살인범에 관한 뉴스 기사부터 영화 등을 찾아보며, 문득 살인범의 패턴을 습득하게 된다. 이 패턴을 찾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해서 이 부분에서 가장 몰입하여 읽었기 때문에 부러 패턴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되게 술술 읽히긴 한데 이런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책 뒷부분의 작품해설의 도움을 받아 왜 9명의 죽음으로 책이 끝나버리는지 알 수 있었다. ‘9는 끝의 예고이며,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마지막 숫자이고 10은 곧 0이기 때문에’라고 해석한 것을 읽고 나니 새삼 소름이 돋았다. 장르적인 특성 탓도 있겠지만 작가님이 촘촘하게 구성해놓은 전체 그림을 보고 나면 작품의 의미가 배가 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구성적인 면에서 더 치밀한 소설이었다.
‘장영민’이 찾은 패턴의 패턴을 읽어내려고 하다 보면, 어느샌가 ‘살인’이라는 행위의 시작이 ‘해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 다른 원인과 양상으로 시작되었을 ‘해치려는 마음’이 결과적으로 ‘살인’까지 닿느냐 아니냐일 뿐이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품고 살아가는 ‘적의’와 닮아있다는 걸 말이다. 이 소설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은 총 셋인데, 한 인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살인의 동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을 설득한다기보다는 납득 가능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살인이라는 것의 잔혹성에 대해 그린다. 이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작가의 그런 능력에 내내 감탄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소설 속의 세상처럼 모두 ‘살인’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오싹한 소설이었다.
숫자와 차트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빨강은 피도 장미도 정열도 사랑도 아닌 오직 수익이다. 파랑이 바다도 하늘도 희망도 우울도 아닌 오직 손실인 것처럼. - P18
신비로운 결속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연인에게 그런 대답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흠결까지 사랑하는 것과 흠결을 사랑하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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