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별은 늘 슬프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이별은 슬프다. 이야기의 초입에서부터 할머니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나’와 ‘할머니’의 이별을 소설 속의 ‘나’처럼 오래도록 소화해내야만 했다.
대학생인 ‘나’는 엄마의 일방적인 권유로 할머니의 집에서 몇 개월간 지내게 된다. 엄마의 독단적인 선택이 시작이라는 것 이외에 ‘나’는 할머니와 죽이 잘 맞는 편이었고, 할머니의 세월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른하고도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 무해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할머니의 잔기침 소리가 ‘나’의 귀에 거슬리지만, 할머니도 엄마도 알려주지 않는 할머니의 병명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곁에 머무르는 손녀가 할머니, 엄마, 자신으로 이어지는 3대 각각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 소설’이다. 기존의 모녀 서사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이 이야기가 불평등이랄지 갈등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대에서 오는 차이와 개인 각각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이에 대해 인물들이 속 시원히 드러내지 않는 데다가 서로를 명확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서로를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가스라이팅이랄지, 가부장제랄지, 대리효도랄지 이런 말들로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친밀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인물들을 방식으로 읽어내고 싶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친애하고, 또 친애한다는 뜻, 즉 대상에 대한 친애의 정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주인공 ‘나’의 엄마인 ‘현옥’과 워커홀릭 엄마 대신 ‘나’를 사랑으로 돌봐준 할머니인 ‘예분’, 두 존재 모두에 해당하는 형용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가 훗날 아이를 임신하며 가지게 된 모성애에 대해 곰곰이 뜯어보며 ‘나’의 엄마가 그러지 않음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납득한다. 궁극적으로 유약하고 곰살궂은 인간들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음을, 사랑이라는 것은 비교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소설은 알려준다. 먼 훗날 홀로 됨을 두려워할 마음들에게 이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