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화가의 하루
피에르 보스트 지음, 길우경 옮김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이고 삶이 있으면 곧 죽음도 함께 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 필연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
어느 노 화가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잔잔한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다. 결코 놀랄만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었지만 이 소설의 여운이 이렇게나 오래 남는 것은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늘어갈 때마다, 얼굴의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느낄 수 있었던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어느새 조용히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과연 인생의 황혼기를 나는 이제껏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곰곰히 돌아보게 된다.




나이가 들면 불평이 많아지는 것일까?
드문드문 검버섯이 피어난 피부, 앙상하게 말라버린 몸과 탄력을 잃어 쪼그라든 가슴이 말해주듯이 이제 일흔 여섯이 된 라드미랄 씨는 자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 푸념이라도 늘어놓아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아침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는 것 또한 그의 오래 된 습관 중에 하나였다. 마치, 오랜 여행을 떠나기 전 차표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처럼..
그는 이런 참담한 현실을 남들에게 만큼은 숨기고 싶었지만 부단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화를 감추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아들 공자그와 딸 이렌느가 있었지만 아내가 죽고 없는 지금, 그는 더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




한 때 위르뱅 라드미랄 씨는 프랑스 학사원의 정회원이었고 프리 드 롬과 살롱전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유명 인사들과 정부기관으로부터 초상화를 부탁 받을만큼 공인된 명예를 가진 사람이었다.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아오며 그림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한 그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무턱대고 사랑하거나 과욕을 부리며 살지는 않았다. 인생에 있어서 그가 믿었던 철칙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대중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점이었다. 라드미랄 씨는 이미 진작부터 자신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가 지닌 허영과 자존심을 적절히 충족하며 겸손할 줄 아는 삶을 살아왔던 이였다.

 







집까지 돌아가는 데 라드미랄 씨는 거의 20분이나 걸렸다.
그가 다리를 약간씩 절며 걸은 것도 있지만 그다지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양빛은 너무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옅게 드리워진 잿빛과 석류의 검붉음, 그리고 자로 선을 그은 듯 
겹겹이 모습을 드러내는
초록빛으로 밤하늘은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이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없을것만 같았다.




가족이라는 굴레에 대해, 아버지의 노후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읽기에 좋을듯 싶다. 혈연관계인 가족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감싸줄 수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더욱 사랑하며 단단해져 가는 것
가족의 믿음과 사랑을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한 호숫가라면 좋을듯 싶다
노 화가의 평범한 어느 일요일 하루를 통해 인생의 황혼이란 그렇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너무나 황홀해 눈이 부신 아름다움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세상과 가족과 부딪히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을 조용히 음미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