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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1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마지 피어시의 작품은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로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낯선 작가의 작품을 선택할 때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지만 이번 작품은 평소 페미니즘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란 이유만으로도 주저없이 선택해서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 미래와 유토피아 미래의 경계에 선 한 여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소갯말도 흥미로웠지만 빈부격차와 성차별, 인종차별, 환경오염과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대화 된 미래의 모습이 너무나 섬뜩하고 아찔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더욱 궁금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힘없고 가난한 여성의 삶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내심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뉴욕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 곳에 서른 일곱살의 라틴계 출신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여성 코니가 살아간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에게도 한 때 다정한 남편과 딸이 있었다. 비록 소매치기였지만 그녀와 딸 아이에게 다정다감했던 남편 클로드는 수감중에 보호 감찰관의 농간에 속아 간염 혈청 주사 임상 실험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클로드가 죽은 뒤 몇 달 동안 술에 찌들어 딸의 양육권을 지킬 수 없었던 코니는 이미 사회로부터 이혼녀와 정신질환자, 아동학대 전과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힘없는 약자였지만 그런 코니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녀의 눈에 얼마 전부터 루시엔테란 인물이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단지 환영과 환청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루시엔테는 2137년 미래에서 찾아 온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느닷없이 조카인 돌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찾아온다. 임신 2개월째였던 돌리는 애인이자 포주인 헤랄도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후 고모인 코니의 집으로 피해 도망쳐 온 것이었다. 병원에도 갈 수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상황속에서 앞이 까마득했지만 코니와 돌리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헤랄도가 그의 하수인과 정체모를 한 남자와 함께 코니의 집을 찾아와서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헤랄도는 성실한 편이었지만 돌리와의 결혼을 싫어했고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된 후에 감옥가는 일은 면했지만 돈벌이가 끊긴채 돌리에게 매춘을 시키고 있던 위험한 인물이었다. 포주다운 여유를 풍기는 옷차림에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외모만 보더라도 헤랄도가 얼마나 악랄하고 교활한 사람인지 누구라도 쉽게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신한 아이를 출산하고 헤랄도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돌리는 아이를 없애자는 헤랄도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었고 헤랄도의 폭행은 또 다시 시작된다. 함께 동행했던 남자와 억지로 돌리에게 중절수술을 하려 했던 헤랄도의 모습을 보고 코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막고자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만신창이가 될 만큼 얻어맞은 코니는 그들의 손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마는데 침대에 꽁꽁 묶인 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지극히 형식적이고도 불필요한 질문으로 꾸며진 의사와의 상담은 그녀에게 그 어떤 해결책도 되어주지 못하고 그러는동안 점차 그녀의 의식은 병들어 간다. 멀쩡하던 사람도 그런 상황에서 견뎌내기란 거의 불가능 할 것처럼 보였다. 반복되는 병원생활에 그녀는 점점 자기 혐오에 찌들며 삶에 지쳐가고 오히려 답이 없는 그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병원에 있으며 미래와 현재를 넘나들게 되는 코니는 극과 극의 미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차별과 감시가 없는 평등한 유토피아는 그녀가 그렇게도 꿈꿔왔던 세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모습은 평등한 세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니는 현재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디스토피아를 경험하게 되는데 인종과 성차별, 계급주의와 자본주의의 말로를 보여주는 끔찍한 곳을 겪으며 불행한 미래세상으로부터 자신과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실제로도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수를 셀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사회적 약자의 눈을 통해 정신병동과 미래세상을 함께 경험하며 여성과 인권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아름답고 평등한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