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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의 비밀노트 ㅣ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필립 라브로 지음, 조재룡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0년 4월
평점 :

열 네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시기여서 그런지 세세한 기억들은 나질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열 네살이란 나이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는지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그 어정쩡한 시기에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무엇이고 또 미래의 나의 삶을 위해 나는 어떤 생각과 노력을 하며 살아왔는지 기억해보고 싶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기도 하다. 스테파니의 비밀노트를 읽으며 새삼스레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사춘기 소녀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너무나 큰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이유로 자신만의 유일한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철저한 사육에 의해 키워지고 길들여지는 학생들은 농장에서 길러지는 염소와 거위 따위의 동물들과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스테파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생들은 모두 동물에 불과하고 한 둘을 제외한 나머지의 선생님들은 농장지기들이다. 농장은 곧 학교이자 지옥이었다. 하지만 스테파니가 더욱 울고 싶었던 이유는 친구들 모두 시작한 생리를 오직 자신만이 시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열 세살 소녀가 늘 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생리만의 이유였을까? 그렇지 않다면 열 세살이기 때문이었을까?
스테파니에게 세상이 미리 정해놓은 관습이나 법칙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스테파니는 리스트 작성하기를 좋아하는 열 세살 소녀였다. 그녀의 리스트에는 생리를 시작한 친구들의 이름도 적혀 있고, 부모님이 집에 함께 있던 순간들도 적혀 있다. 또한 스테파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들도 적혀 있다.

누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홍역과도 같은 성장통을 겪게 마련이다.
세상을 배우고 익혀가면서 자연스레 변화에 대한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조금씩 세상속에 스며드는 자신 스스로에게 아픔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테파니의 비밀노트를 읽어갈수록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비밀노트는 스테파니에게 있어서,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춘기란 시기를 마음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소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열 네살이란 나이를 지나왔고 스테파니처럼 어른들의 세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해 볼수 있을것 같다.
스테파니의 비밀노트는 열 네살 사춘기 소녀가 자신이 겪었던 몇 달간의 삶에 대한 기록과 위태로움을 숨김없이 적어놓은 기록이다.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삶의 아름다움과 고독에 대해, 그리고 행복에 대해...
비밀노트는 마치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 소녀의 거울과도 같은 책이었다. 자신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거침없는 소녀의 이야기가 이 책에 더욱 끌리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스테파니의 비밀노트를 읽으며 어쩌면 아주 오래전 나의 모습을 비춰볼 수도 있었고 아주 오랜 옛 친구를 만나 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고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는 기분에 홀가분해짐을 느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