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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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의 감성과 사춘기 시절 풋풋한 첫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라붐.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한 편 있는데 그 영화는 바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이란 영화다. 퍼스트 레이디란 소설을 읽으며 줄곧 라붐의 빅이 기억났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이제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하는 열정을 안고 이성에 대한 사랑을 처음 느끼기 시작하면서 안절부절할 수 밖에 없었던 퍼스트 레이디의 초반부 앨리스의 모습이 아마도 라붐의 빅과 너무나 많이 흡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커티스 시튼펠드의 책은 이번 퍼스트 레이디로 처음 접하는 것이었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그래서 오랜 여운이 남는 진정 소설다운 소설을 한 권 읽었다는 기분이 든다. 퍼스트 레이디란 제목과 이 소설이 전 영부인 로라 부시로부터 얻은 영감으로 지어진 이야기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지게 되었던 선입견은 몇 번씩 곱씹으며 읽었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장들로 인해 자연스레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의 의견이 종종 맞지 않을때도 있지만 가정적인 부모님과 자상한 할머니로 인해 앨리스의 가정은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앨리스의 가정이 보통 가정과 좀 달랐던 단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면 그것은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을 좋아해서 책 한 권을 하루에도 우습게 읽어내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특이하고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들이 언제나 끊이지 않았다는 부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작되는 가슴 설레이는 첫사랑은 앨리스에게도 찾아든다. 느낌만으로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앤드류가 언제부터인가 부쩍 신경쓰이지만 앤드류는 단짝 친구 데나와 사귀기 시작하고 앨리스는 아직 사랑에 대한 감정이 서투르기만 하다.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앤드류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그 사고로 인해 앨리스의 인생은 점점 암흑기에 빠져들고 만다. 앤드류의 형이었던 피트와의 관계를 통해 암울했던 상황을 해결해 보려던 마음은 어느새 그녀 자신을 더욱 위험한 절망에 빠뜨리고 마는데... 원치 않은 피트와의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된 후 그녀는 낙태수술을 받기에 이른다. 라붐이란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이었던 소피 마르소가 첫 데이트 약속을 하게 된 후에 할머니로부터 피임기구를 선물받는 장면이 나온다. 퍼스트 레이디에서도 역시 앨리스의 임신 사실을 가장 먼저 할머니가 알게 되고 낙태 수술 역시 할머니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두 장면이 묘하게 어울리며 생각났던 장면이기도 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치르려했던 위안은 오히려 자신을 향한 증오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아픔만큼 성숙해지며 이제 앨리스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앨리스는 그저 자신에게 허락한 인생을 수긍하며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불행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앨리스 역시 남들처럼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몇 몇의 남자와 데이트도 하고 몇 년간 사귀던 애인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앨리스의 인생에 찰리 블랙웰이 나타났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찰리만이 그녀의 인생에 허락된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자신도 모르게 삶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인연 가운데 정작 자신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이라 했던가.




찰리는 불완전한 앨리스에게 가장 적합한 인물이란 사실을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었으니 앨리스와 찰리야말로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찰리와의 결혼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주지사의 아내로, 차기 대권주자의 아내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면서 앨리스는 이제 예전의 혼란스러웠던 삶의 나약한 앨리스가 아니었다. 만일 앨리스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더라면 그녀의 회한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결함을 들춰내지 않는, 오히려 그 결함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앨리스에게 허락된 삶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수많은 기로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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