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너무나 무료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것들이 작가의 손 끝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변해간다. 늦은 아침 몽롱하게 눈뜰 수 있는 반지하의 작은 공간, 삼거리 모퉁이의 실내 포장마차, 골목길 끝 빵집과 그 옆 모텔, 사거리의 낡은 건물, 횡단보도에 이르기까지...
하다못해 뉴스 시작 전 이삼십 초에 짧은 광고의 온갖 스토리도 그의 글을 통해서라면 이제껏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로 전해져 온다. 익숙한 모든 것들에 이토록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이 직접 대필작가의 삶을 살았던 것을 계기로 작가 스스로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싶었다는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는 인생에 얽힌 수많은 관계가 바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라고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내던지고 있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란 알 수 없는 뜻의 제목과 대필작가의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유명한 소설이라면 극적인 스토리와 인물간의 갈등, 독특한 인물들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안에는 여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나 극적인 반전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양념이 덜 된 것처럼 심심한 기분도 들었고 자연스레 책을 읽기 전 나는 화려한 수상 타이틀이 이 책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란 느낌을 가지기도 했던 것 같다.

 




 

소설의 화자는 제 3의 작가로 불리는 대필작가이다.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으로 대필 일을 하고는 있지만 작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도 대필작가로서의 원칙이라는게 있다. 생계비를 벌겠다고 시작한 마당에 대필에 원칙을 세우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었기 때문에 원칙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몇 일째 의뢰인의 문의 전화도 없고 째깍째깍 시계 초침소리만 고요한 적막을 가르는 사무실은 내내 고요하기만 하다. 마침 허기를 느낀 나는 골목길 모퉁이의 포장마차로 향한다. 오늘은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내가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이 동네뿐이다. 축축하고 서늘한 느낌의 공허한 눈빛과 그 어떤 표정도 느낄 수 없는...




생전에 아내가 만들었던 문패에는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무 의미없는 말을 새겨놓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아내와 함께 해온 시간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오늘도 새벽녁에 골목길을 나선다. 소설속의 내가 바라보는 골목길 구석구석의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한 일상과 만나 어느새 묘한 분위기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런 저자의 글은 곧바로 읽는 이로 하여금 벗어날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게 했는데 바로 이런 느낌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화자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도시 풍경의 섬세한 묘사였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그의 상상력에 쉽게 빨려들고 말 것이다.
그동안 내가 가진 소설에 대한 환상은 이 책을 통해서 너무나 가식적이고 이기적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삶이 섞이고 각기 다른 인과관계가 우연을 거쳐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 진정한 소설이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고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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