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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전 잉글리시 페이션트란 영화를 본 후 한참이나 가슴먹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과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처절한 사랑, 특히나 여주인공이 외로이 동굴에서 혼자 죽어가야만 했던 그 장면은 십 년이란 시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평생 봐왔던 영화 가운데 손안에 꼽히는 유일한 그 영화의 원작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소설이란 생각을 가지게 했고 이 책은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책이 도착한 후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아카데미 9개 부문 수상작으로도 유명했지만 원작 소설은 세계 3대 문학상 중에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그만큼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래 전이라도 소설의 영화를 봤던 기억때문일까? 그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은 이루 말 할 수 없을만큼의 것이었지만 역시나 책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웅장했고 거대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단순한 연애, 사랑소설로만 한정지어 생각할 수가 없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남녀간의 애정소설로만 생각하기에 이 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가는 주인공들의 삶 속에는 그 어느 작품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감동과 아픔, 인간으로서의 깊은 고뇌가 담겨져 있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한 수도원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타버린 채 겨우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는 잉글리시 페이션트라 불리우는 한 남자와 그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해나란 간호사가 있다. 또한 이 수도원에는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불구가 된 스파이 카라바지오와 전쟁으로 모든걸 잃어버린 킵이란 인도 공병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남자가 과거속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오래 전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고가 나기 전 알마시는 국제 지리학회 팀원으로 아프리카 북부 사막지대의 지형을 조사하고 지도를 작성하는 일을 하던 중 영국의 귀족 부부였던 제프리와 그의 아내 캐서린을 알게 되는데 알마시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여인 캐서린은 이미 유부녀였지만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이를 알아버린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가 꾸민 사고로 두 사람의 운명은 더욱 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나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던 알마시와 캐서린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했고 오히려 원작 소설을 읽으며 더욱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캐서린이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동굴안에서 혼자 죽어가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아려온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광활한 사막과 전쟁을 배경으로 만나서는 안 될 운명의 주인공들의 격정적인 사랑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네 남녀의 스토리로 장면마다 시린 상처와 감동을 선물해주는 책이었다. 오래동안 소장하고 볼 수 있는 원작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뿌듯하고, 책을 읽어오는 동안 영화보다 더한 감동과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