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구제

성녀의 구제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성녀의 구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란 이유만으로 망설임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추리물을 제대로 접하며 읽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서 읽은 그의 전작들로 인해 이제 히가시노의 작품이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구입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 기회가 될 때마다 그의 작품을 계속해서 모으고 있기 때문에 성녀의 구제 또한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책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히가시노의 열렬한 팬이 되버린 것은 그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와 치밀한 구성으로, 혹은 생생한 사건의 묘사와 스토리의 빠른 전개로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이번 성녀의 구제는 갈릴레오 시리즈 4탄이란 이유로 더욱 기대감이 높았지만 무엇보다 성녀의 구제란 의미심장한 제목부터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IT 회사의 사장 마시바 요시다카가 자택에서 독살된 채 발견되는데 사인은 아비산이란 독극물로 인한 중독사였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그의 아내 마시바 아야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녀는 친정이 있는 삿포로에 가 있었고, 그녀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되면서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수사에 나선 구사나기 형사는 요시다카의 내연녀 와카야마 히로미를 의심하는데 그녀는 아야네의 애제자이기도 했다.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는 요시다카의 아내 마시바를 의심하게 되고,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등장하면서 사건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한 아야네의 고통과 괴로움을 알아갈수록 마시바 요시다카를 살해한 범인은 그의 아내 아야네일 것이란 생각이 짙어졌다. 하지만 히가시노의 여러 작품에서 그랬듯이 성녀의 구제에서도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문제보다는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는 맛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실제 벌어질 수 있을 것인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완전 범죄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히가시노의 거대한 작품세계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눈앞에 범인이 뻔히 드러나는데도 어떤 트릭을 썼는지 전혀 감을 잡을수 없는 답답함과 긴장감이 책 한 권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잘못된 사랑과 배신, 그리고 애증은 결국 그녀로부터 모든이들을 위한 구제를 생각하게 했고, 그 오랜 시간동안 외롭고 처절하게 버텨왔을 그녀를 생각하면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성녀의 구제에 대해 알게 되고, 책장을 덮고 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히가시노의 작품답게 성녀의 구제 역시 추리소설의 기본 패턴이란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범인과 살해 동기가 완벽하게 드러나고 있고, 어떻게 죽여야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을것인가로 고민하게 했던 작가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완벽할것만 같았던 범죄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헛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트릭을 정확히 알게 되면 누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