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맨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슬로우 맨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존 쿳시의 개인적인 삶이 계속해서 오버랩 되었던 것은 주인공과 저자가 비슷한 환경속에서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슬로우 맨은 이민자의 애환과 노년의 사랑에 대한 서글픈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작가 존 쿳시는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았지만 남아프리카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그가 어렵게 이주를 결심했던 것은 추락이란 작품 출간이후 많은 사람들의 차갑고, 냉담했던 반응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아공에서 백인여성이 흑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땅까지 빼앗기게 되는 내용의 소설을 출간한 존 쿳시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부커상 2회 수상작가로 유명한 존 쿳시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낯선 작가의 작품에 저절로 이끌렸던 것은 아마도 책을 읽기 전 소갯말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첫인상이 무척이나 강렬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이 나의 삶을 먹어치웠다란 어찌보면 평범한 문장속에 숨겨져 있던 담대함과 비범함이 이 책에 이끌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함속에 숨겨져 있는 비범함이란 그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슬로우 맨을 읽게 된다면 반드시 그 짜릿한 경험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온 몸이 콘크리트로 싸여있는 것 같고, 정신을 차릴래야 차릴수가 없다. 아득하기만 한 시공간을 오고가며 몽롱한 느낌속을 헤매이다 드디어 잠시잠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을 때 그에게 들려왔던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교통사고와 의족, 심각하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예기치 않았던 교통사고와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던 가엾은 레이먼트의 이야기로 슬로우 맨은 시작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자신의 다리를 잃은 레이먼트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고, 의사에게 따져묻고 싶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쏟아내며 울고 싶었지만 울 수조차 없었고 가장 서글픈 사실은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이도 많고, 사고로 거동도 불편해진 그였지만 그렇게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그에게 사랑은 찾아왔다. 이민자였던 마리야나의 간호를 받으며 그녀에게, 그리고 달라진 자신에 익숙해져 갈 때쯤 레이먼트의 가슴은 그녀로 인해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레이먼트의 노년의 사랑은 가을빛과 참 많이 닮아 있었고, 식어있던 열정도 잔잔히 일깨우는 모습이었다. 
존 쿳시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읽은 그의 첫 작품은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고독한 노년의 삶과 사랑을 통해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삶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지만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살아가지만 가슴 속 깊은 구석엔 언제나 희망이 가득차 있고, 늘 이룰 수 없는 꿈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인간적인 것이며,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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