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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과 절망 사이.
과연 우리는 그 적절한 균형을 조화롭게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을까?
처음 적절한 균형이란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제목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이미지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절한 것.
한 평생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부분에 적절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하는 우울한 마음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고, 또 책의 분량이 만만치 않았지만 제목이 의미하는 뜻이 무엇일지, 궁금했던 인도의 문화와 사회를 더욱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75년 간디가 수상으로 재임하던 시절, 인도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권은 끝없이 무너지고, 가라앉는다. 디나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마넥과 이시바, 그리고 이시바의 조카인 옴프라카시는 디나의 집에서 재봉일을 하며 같은 공간에 모인 주인공들의 불행한 이야기는 이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카스트 제도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 천민이며, 대학생 마넥과 소수민족의 디나 역시 인도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불행한 영혼들이었다. 적절한 균형은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도 특히나 이 네 사람의 인생을 통해 카스트 제도의 잔인함과 그로 인한 인도의 사회와 정치적 문제를 풀어간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가장 낮은 계급은 이미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말살당한채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 끔찍한 상황은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더더욱 힘겹게 느껴진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소설을 자주 읽고 있기는 하지만 근래에 읽었던 책들 가운데 이 책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느낌을 전달해주었던 책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적절한 균형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인도의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와 인도인의 처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때로는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 신랄하게 다가와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두어야 할 순간도 있었을만큼 끔찍한 학대와 고문에 대한 묘사가 괴로움을 안겨 주기도 했다.
인도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정복민들을 쉽게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카스트 제도였다. 하지만 입에 담기에도 어려운,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끔찍했던 신분제도의 만행은 비단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만 해당되는 불행은 아니라고 본다. 하루빨리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불평등하고, 고통스러운 제도와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가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더 이상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그 누구에게도 상처와 고통이 되지 않기를..
뜻하지 않은 대어를 낚은 기분이다.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인간의 가장 빛나는 희망을 만날 수 있었고, 또한 죽을만큼 참을 수 없는 괴로운 고통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감동과 눈물로 거대한 최고의 걸작과 함께 했던 몇 일간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