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살인사건

카프카 살인 사건
크리스티나 쿤 지음, 박원영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1월

천재 작가로 정평이 나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 여기에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올해 가장 뛰어난 최고의 지적 미스터리란 소갯말은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었다. 솔직히 카프카의 책을 아직 접해본 적은 없지만 그를 상징하는 어둡고, 암울한 카프카적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카프카 살인사건이란 제목과 묘한 분위기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프란츠 카프카와 카프카 살인사건이 어떤 미스터리로 탄생했을지 너무나 기대되는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프랑크프루트암마인 어느 허름한 건물의 낡은 연습실. 
낯선 남자의 등장과 잠시 후 피루에트가 흐른다. 책을 펼치자마자 카프카적인 허무와 암울한 분위기의 묘사가 시작되면서 추리소설을 찾는 이유를 바로 느껴볼 수 있었다. 카프카 살인사건은 어느 발레리나 소녀의 잔혹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온 몸이 금속 밧줄로 찢겨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된 어린 소녀. 글의 흐름상 오로지 목적을 위해 춤을 췄다고 보기에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다. 더욱 궁금했던 것은 끔찍한 고통속에서 그녀는 살기 위해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앞에서 태연히 춤을 추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더욱이 죽음에 이르면서까지도 그녀는 그 어떤 반항조차 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춤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 후 더욱 빨려드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이 목적이었지만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만 보기에는 그녀에게 가해진 고통이 너무나 처참하고, 끔찍했다.

사건을 맡게 되는 여검사 미리암 싱어와 헨리의 로맨스는 다소 급박하고 긴장했던 분위기를 한층 풀어주며 조금은 여유롭게 등장한다. 미리암은 어린 처녀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발레곡을 발견하게 되고, 헬레나 살인사건은 변태 성욕자의 단순한 창녀 살인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같은 시각. 베네딕트 거리의 어느 고서점.
고서점 주인인 필리프 체르니 앞으로 익명의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과연 살인 사건과 문학사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문서의 관계가 무엇일지 카프카 살인사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던 부분이었다. 곧이어 두 번째 살인 사건의 희생양이 등장하면서 작품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한편, 미리암에게 걸려 온 의문의 전화와 범인이 사건 현장마다 남기고 간 이니셜 K는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더욱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범인의 수법이 너무나 잔혹하고 끔찍한 탓에 도대체 이런 살인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일지 책을 읽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카프카 살인사건은 카프카의 미발표 단편소설을 매개체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에 프란츠 카프카와 이 책의 연관성이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카프카적 분위기가 책의 플롯과 너무나 잘 맞아들었다는 생각에 오랫만에 찾게 된 추리물로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