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에 사는 여자
마쿠스 오르츠 지음, 김요한 옮김 / 살림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침대 밑에 사는 여자라는 제목은 나로 하여금 순식간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생각들로 가득차게 했다. 책의 제목을 보고 야릇한 상상을 했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 침대 밑에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것만 같은 책의 제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과연 침대 밑에서 그녀가 만났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또 침대 밑에서 그녀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어찌보면 타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스토리를 알게 되고, 주인공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독특하고 불편하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독일 작가 마쿠스 오르츠에 대한 설레임과 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으며 세상과는 단절된 채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린은 우연히 호텔 메이드로 일하게 된다. 깨알같은 먼지 한 톨, 욕실 타일의 보이지 않던 옅은 얼룩 하나하나, 양탄자 밑에 깔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얼룩을 찾아내는 데부터 그녀의 일은 시작된다. 청소에 강박증이 있는 린에 대해서 너무나 구체적이고, 세밀한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특징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반듯하게 각이 잡힌 타올, 주름 하나 발견할 수 없는 이불, 방금 다림질을 끝마친 것 같은 침대 시트... 비어 있는 객실에도 늘 먼지가 쌓일 것이란 생각에 린은 근무 시간이 끝나도 자기 의지대로 유령처럼 바삐 움직인다.




그러던 어느 날. 비어 있는 객실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던 린은 손님이 객실에 들이닥치며 꼼짝없이 침대 밑에 숨어들게 된다. 손님이 샤워를 들어간 사이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침대 밑에 남아 게임을 시작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손님의 사생활을 훔쳐보기는 어느새 그녀의 일상에 알 수 없는 활력소가 되고 이제 린은 매주 화요일 짜릿한 일탈을 즐기며 침대 밑에 숨어들어가는 일은 그녀의 생활이 되어버렸다. 비어 있는 객실에서, 또는 손님이 들어왔더라도 객실의 은밀한 침대 밑에서 린은 그 무엇도 똑바로 알 수 없었다. 남아있는 소지품만 가지고 손님들을 그려보았고, 침대 밑에서 그녀는 오로지 소리와 느낌만으로 마음껏 세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독특한 소재와 스토리 때문이었는지 유달리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라 느꼈는데 이 책에는 특히나 쉼표가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 쉼표를 더욱 많이 표현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침대 밑에 사는 여자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 혹은 세상과의 소통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만났지만 소외된 영혼 린의 끊을 수 없는 중독이었던 훔쳐보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일탈과 소통에 대한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각박한 세상, 누구나 린처럼 타인을 훔쳐보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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