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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가 책을 냈다는 소식이 처음엔 썩 달갑지가 않았다.
내가 고지식한건지, 아직 그리 많은 책을 읽었다고 볼 수 없었던 나의 식견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유명인이라는 스타성을 등에 업고, 단순히 스타란 이름에 의존해 책 한 권을 ‘뚝딱’하고 별 어려움없이 출간한 것은 아닌지가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인표라는 이름을 가진 스타가 낸 책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는하겠구나 싶었다.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혹시라도 그의 이름만 빌려주었거나, 뭐 그런식의 책이라 무엇하나 건질게 없는 책은 아닐까?
그러다 얼마 전 아침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차인표씨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37명의 아버지로서 세계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한 곳을 다니며 꾸준히 봉사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소탈하고 진실한 그의 모습이 차인표란 사람에 대해 조금씩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은 스타 차인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화면 속의 그는 연예인같지 않은 털털한 모습에 겸손하기까지 했다. 그는 마음을 다해 사랑과 희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감사함과 슬픔,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1931년. 조용하고 아늑한 호랑이 마을에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작은 언덕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언덕을 잘 가요 언덕이라 부르는데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여서 “잘 가요. 잘 가세요.”를 외치며 떠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 마을에 호랑이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나타나는데 용이는 전설적인 호랑이 백호에게 엄마를 잃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호랑이 사냥을 하며 산에서 자란 용감하고 늠름한 모습의 열 세살 소년이다.
용이는 마을촌장의 손녀딸 순이, 어수룩한 모습의 고아였던 훌쩍이와 금새 친해지며 알콩달콩 예쁜 사랑도 함께 시작된다.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마을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들과 순수하고, 맑은 용이와 순이의 가슴 설레이는 예쁜 사랑의 감정들을 표현한 글은 작가 차인표의 글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였던 부분이었고, 13살 소년 용이와 순이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로 걱정해주고, 보듬어주는 인생의 중요한 의미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그의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책에 위안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 장교의 편지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사악하고, 잔인할 것만 같은 일본군의 모습은 어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효심 지극한 청년의 모습으로 비춰졌고, 이런 그의 모습이 조금은 인간적이고, 어쩌면 가슴이 따뜻할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믿지못할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호랑이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육발이를 산에서 잡아온 황포수와 용이는 마을 사람들의 영웅이 되지만, 마을 아이들이 황포수가 움막을 비운 사이에 호랑이를 잡으로 간다며 총을 가지고 달아난 사건으로 인해 용이와 순이, 그리고 훌쩍이는 어쩔수 없는 오랜 헤어짐을 하게 된다. 7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일본군들은 조용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호랑이 마을에 조선인 여자 인력 동원 명령서를 들고 나타나는데...
훌쩍이의 가슴 아픈 죽음과 일본군부대에 끌려간 순이를 탈출시키기 위해 두문불출했던 용이와 가즈오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잘 가요 언덕이란 책은 그 후 70년의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되어 필리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쑤니 할머니의 뒷이야기까지...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절대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 힘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순이가 용이에게 들려주었던 엄마별 이야기와 결국 위안부로 끌려갔던 순이가 할머니가 되어 돌아온 마지막까지 진정한 용서가 가진 힘은 진실로 위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