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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슬기 맑힘이다 ㅣ 사이의 사무침 1
구연상 지음 / 채륜 / 2009년 3월
평점 :
철학은 사람의 삶 자체를 주제로 삼기 때문에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지만 그동안 철학이란 말을 자주 듣고 접하면서도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그만큼 가까운 학문이 철학인데 비해, 철학이란 본래의 뜻은 무척이나 낡고, 허술한 뜻을 지니고 있다. 철학은 철에 관한 학문이고, 철은 지혜란 뜻의 소피아(sophia)의 번역어인데 이렇게 본다면 철학은 소피아에 대한 학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철학의 뜻은 너무 이질적이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삶 자체를 새롭게 이해하겠다는 의지와 누구나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철학을 대신할 말을 찾아내는데 바로 그 말이 ‘슬기 맑힘’이다. 슬기는 지혜의 새김 말이며, 어리석음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맑힘은 맑게 함의 뜻으로 어떤 것이 깨끗한 상태에 놓이도록 만드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과 사물의 본질을 두루 꿰뚫어 볼 수 있게 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접했을 때 조금 낯설기도 했던 ‘슬기 맑힘’이란 말의 뜻을 전부 이해하고 난 후에 오히려 철학이란 말보다는 그 뜻이 조금 더 분명해 보이는 슬기 맑힘이란 단어가 훨씬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다. 슬기 맑힘은 슬기의 힘을 키워 나가는 것이며, 이것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본질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삶의 기본과 진리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슬기 맑힘은 악의 문제와 관련해서 큰 어려움이 따르는데 악은 나쁨과는 차원이 다른 몹쓸 짓을 저질러 누군가의 삶을 허물어버리는 짓이라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악은 남을 자기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삼는것에 그 의미를 둘 수 있고,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정치인들의 거짓말, 다른 민족을 유린하거나 침탈하는 행위,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등 많은 것을 포함하는데 결국 악이란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악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렇게 풀어 본다면 슬기 맑힘과 악은 대조적인 것으로 슬기 맑힘의 근본은 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
1강이 끝나면 2강에서는 인디비듀얼(individual), 개인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저자는 개인이라는 낱말 대신 못-나누미라는 단어로 풀이하고 있다. 개인은 낱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루는 두 요소 가운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부분, 즉 정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은 저마다 못나누미로서 우주 전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못나누미는 결국 사람을 이루는 것 가운데 나눌수 없는 몸이 아니라 나눌 수 없는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못나누미는 사람을 독립된 주체로 정립할 수 있다는 데 그 근본적 의미가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개인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고, 개인의 본질을 파헤쳐 보는데 개인주의와 물질 개념의 변화를 들어 결국 못나누미는 사람에서 그 누구와도 결코 나눌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한다고 정의내리고 있다. 나를 신이나 세계로부터 분리시킨 외로운 독립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자유로운 독립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한국외대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기초로 이 책은 구성되어져 있는데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와 역사, 서로 함께 나눈다는 것의 역사적 의미와 못나누미의 관계, 또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한 그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철학은 원래 철학이란 이름으로 불리웠으니까 그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진 않았지만 슬기 맑힘이란 단어를 알게 되고, 앞으로 철학에 관한 책은 내게 슬기 맑힘의 의미로 다가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