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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몇 달전 인터넷서점에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추천으로 새로운 리뷰들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검색순위에도 몇 날 몇 일을 상위에 링크되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의 책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똥친 막대기라는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났지만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또 이 책의 분야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에서도 꼭 한 번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이런 부류의 책들은 언제 봐도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향수를 자극하고, 복잡하고 힘든 현실에서 잠시동안이지만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의 위안이 되주는 책인것 같아서 부담없이 읽기에도 너무 좋다.
똥친 막대기의 제목을 보면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나 그 윗세대들에게 똥친 막대기는 흔한 단어였을지 몰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다소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필요는 한 것이지만 아주 더럽고, 보잘것없는.. 곁에 두기에도 끔찍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던 것인지 알고 난 후에는 더더욱 유쾌하지만은 않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찮은 막대기 하나의 인생과 그 긴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아내고 있다.
길 위의 작가로도 불리는 똥친 막대기의 저자 김주영은 경북 청송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하룻밤을 자면 다음날의 잠자리를 예측할 수 없었다는 풍천노숙의 삶 속에서 저자는 초라하고, 버림받고 잊혀진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며 작품활동을 하기로 유명한데 똥친 막대기 역시 어미나무로부터 꺽이어 우여곡절 끝에 뿌리내릴 곳을 찾아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연 속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소설인 이 책에서 저자는 가슴에 스며들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언어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양지마을에 새벽마다 화물 열차의 기관사가 엄청난 소음의 기적으로 온 마을을 들썩이는데, 버릇없고 배운 것없는 놈이라며 기관사를 나쁘게만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가 깊은 고요를 깨며 하루도 거르지않고 아침마다 그토록 시끄러운 기적을 울려대던 이유를 알게 된 후부터 그의 속내를 이해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양지마을의 이장님이셨던 부모님께 그만의 안부를 전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기가 참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칠 때도 많았던 나에게 저자가 따끔히 충고를 하고 있는듯 느껴진다. 부모님께서 건강히 살아 계실 때 조그마한 방법으로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효도일 것이다.
곧이어 양지마을 농사꾼 박씨에게 생각지도 않게 꺽여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된 막대기의 여정은 시작되고 소몰이에 사용되었던 막대기는 집에 들여져 박씨의 딸 재희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게 될 때에는 회초리의 모습으로 변한다. 처음 그 모습이 백양나무 곁가지였던 나무 막대기는 이제 처량하기 그지없는 측간의 똥친 막대기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마는데... 막대기는 한 때 푸르른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맑은 하늘과 바람, 나무들이 쏟아내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젠 이루어질수 없는 허망한 꿈이 되어 버리고, 한낱 똥친 막대기를 끝으로 일생을 마감할 순간을 맞게 될 생각으로 절망하고 만다.
하지만 박씨 집안에 모심기가 있던 날. 그 날 재희는 똥친 막대기를 들고 마을로 나가서 놀려대던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휘두르며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봇도랑 언저리에 던져버린다. 똥친 막대기는 더러운 오물이 가득 묻어 있었고, 메말라 가고 있던 상황에 봇도랑의 흐르는 깨끗한 물을 만나는 큰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재희는 다시 막대기에 낚싯줄을 매달아 봇도랑의 수초에서 개구리를 낚는 낚시대로 사용한 후에 막대기를 봇도랑에 버리고 만다. 어미나무의 곁가지로 2년을 살아온 막대기는 언제나 모자람없이 햇살과 비를 맞고,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았지만 고마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여러번의 그 모습이 변하며 막대기는 어미나무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어미나무가 겪어야 했던 길고 긴 고통과 참음의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봇도랑에 몇 일째 비가 그치지 않아 물을 넘쳐나게 만들었고 이제 막대기는 수면위로 떠올라 물결을 따라 끝도 없이 흘러가는 방랑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홍수에 떠내려가던 돼지의 등에 얹히게 되고 일주일 넘게 물결을 따라 흐르다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제 똥친 막대기는 기나긴 여정을 끝마치고, 마지막으로 뿌리를 내려야 할 곳에 정착해서 똑바로 서게 된다. 어미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똥친 막대기도 모진 시련을 꿋꿋하게 견디며 튼튼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보잘것없는 막대기는 또 다른 싹을 틔우고, 수많은 바람과 햇살,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커나가겠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막대기의 모험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 또한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뤄야 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내가 원하던 그 모습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