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게 낯설고 서투르다. 너무 당연한 듯 누리며 지냈던 현실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훌쩍 떠나버릴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곳에 자신의 안식처를 만들어 놓고, 그 패턴에 맞게 생활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가끔씩은 일상에서의 도피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렇게 용감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고, 누구에게나 현실은 그럴수록 더욱 가혹하고, 냉정하기만 하다. 얼마간의 큰 고민이 뒤따르지만 우린 결국 제 자리에 그대로 있을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199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김영하는 달랐다. 한국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은 작가 김영하는 5권의 장편소설과 여러 단편집을 발표하며 이미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홀연 2008년 5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 유랑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김영하의 유랑 생활의 글과 그림으로 엮어진 책이다.




마흔의 나이에 이룰수 있는 모든 걸 가진 남자 김영하는 부족함없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방송과 작품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었지만, 라디오 방송을 그만두게 되면서 그는 생각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늘 휴대폰과 노트북의 배터리 잔량을 걱정하며, 물건과 약정, 계약, 자동이체와 여러가지 다른 의무사항에 속해 살아가는.. 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샐러리맨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예술인으로서의 본질과 내면의 그가 부딪히게 된 것이다. 틀에 짜여진 반복된 생활속에 갑갑한 느낌을 갖고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또 지금 이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수 백번씩 같은 질문을 반복할 때가 있다.


 


 



 

벤쿠버의 UBC대학에서 초청장을 받고 그는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집착을 하고 사는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볼 수 있던 부분이다. 서울에서 집이 팔린 건 5월인데, 벤쿠버에는 8월 초에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두 달 반동안 그는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칠리아는 영화 대부의 돈 콜레오네의 고향이기도 했고,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곳이다. 나 역시 시칠리아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처음 만나는 곳에 대한 동경과 어떤 모습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 지 너무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로마에서의 몇 일은 계속 되는 비로 인해 엉망이 되버렸고, 시칠리아로 들어갈 수 있는 기차를 타기 위해 가야했던 테르미니 역에서는 아무 통보없이 몇 번씩이나 취소가 되버린 기차때문에 유랑기의 시작은 다소 불안했다. 성격급한 나조차 이해할수 없었던 테르미니 역의 역무원의 행동은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끝인 빌라 산지오바니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후에, 페리를 타고 메시나 해협을 건너 리파리라는 섬을 목적지로 정한 그들의 여행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여행을 소재로 한 에세이집의 가장 큰 매력은 낯선 곳의 멋진 사진들을 만날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도 수많은 풍경 사진과 메세지를 전달하려했던 많은 사진들이 있었는데 김영하작가가 직접 찍었다는 부분에 글을 잘 쓰는 분이 사진에도 소질이 있구나..란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메시나에서 시라쿠사 방면으로 남하하다가 들렸던 타오르미나는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형상의 돌들이 무수히 많았고, 티레니아 해안을 따라 가다 만나게 되었던 아케돌치의 황량한 해변을 보는 순간 나 역시 다시보고 싶지 않았던 해변의 악몽이었다. 멀리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던 밀라 니세타와 웅장함을 자랑했던 비너스 신전의 터 그리고 천공의 성 에리체와 아르키메데스에서 만날수 있었던 멋진 분수, 두오모 광장이 아직도 눈에 서성거린다.

 


 

 


 

여행중에 생기는 향수는 묘한 매력으로 회귀본능을 자극한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다가도 막상 낯선 곳에서 지내다보면 원래 내가 있던 그 자리가 그리워지고, 나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지는 감정은 참 모순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이번에도 난 역시 떠난 그들이 부러웠지만 원래 내 자리에 있는 순간의 행복함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로마를 여행하면서 역사와 재미있는 일화도 빼놓지 않았는데 이 부분 역시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였기 때문에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로 증가시킨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거쳐 드디어 마지막 도착지였던 아그리젠토에 이르러 웅장함을 자랑했던 신전의 계곡을 만난다. 시칠리아 중부의 평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던 나도 바다보다 평원이 멋질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꼭 한 번 가보고싶은 도시란 인상을 받았다. 아그리젠토의 멋진 신전을 보며 드디어 책의 마지막이 다가왔구나하고 느낄수 있을 정도로 이번 여행 역시 어떻게 지나갔는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버렸다는 아쉬움과 함께 김영하작가의 여행을 빌어 내 자신의 또 다른 비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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