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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5월 5일 한국 문학의 위대한 별이셨던 박경리 선생이 세상과의 끈을 놓고 타계하셨다. 우리는 이제 다시 살아생전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찬란했던 그녀의 문학을 만날수가 없게 된것이다. 한국 문학을 일컬으며 박경리 선생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위대한 그녀의 업적이자 한국 문학의 유산인 토지를 이야기하지 않을수가 없다. 무려 26년간의 기나긴 시간과 4만여장이나 되는 그 거대하고 웅장한 스토리에 한국인의 정서를 이만큼이나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풀어낼수 있었던 작가로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한국 문학의 거대한 산맥이었던 것이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 (計算)과 1956년 흑흑백백 (黑黑白白)으로 현대문학에 데뷔하게 되는 그녀는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기게 되는데 그녀의 주요작품으로는 파시, 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불신 시대, 전장과 시장, 가을에 온 여인, 토지, 거리의 약사등 이루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작품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다르게 선보이셨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가치있게 다루며, 가장 한국인다운, 그야말로 한국 대중들의 살아있는 역사 그대로를 거대한 소설로 재탄생 시킨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란 이 책은 돌아가시기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엮어낸 유고시집이다. 소설가이셨던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은 제목 그대로 한 많았던 그녀의 인생을 아무 미련없이 정리하며 회상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를 비롯한 일가 친척되시는 분들을 그리워 하시는 모습도 있으셨고, 가진 자와 없는 자들이 채워나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 모두 다 훌훌 털어버리셨던 그녀의 내면 세계까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시는 모습을 보며 남게 되는 이들은 그녀처럼 홀가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고픈 거였나보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제 더이상 그 분을 만날수가 없음에 내내 맘이 저려왔다. 그녀가 남겼던 소설만큼이나 굴곡졌던 그녀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모질고 고단했던 그 인생을.. 살아왔던 만큼이나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전쟁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그녀는 부모와 자식을 위해 글을 써야만 했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듯한 기억이 난다. 내가 행복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던 인생을 살아왔나 싶은 마음에 너무도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러나 유고시집에서 만날수 있었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많이 아파하고 있는 모습도 아니었다.
인생이란 한 번 살아볼만 한 것이란 확실한 증거를 내게도 보여주는 것처럼 그녀의 글은 어디에서 봐왔던 것들보다 더욱 더 편안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마치 이젠 더 이상의 한도, 배울것도, 가질것도 없는듯 인생에 있어 모든 감정이나 생각에 통달이라도 하신듯 말이다. 감사하게도 책 후반에 보면 그녀의 살아생전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만날수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본다.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아닐지라도 고무신을 신고 밭을 가꾸고, 담배 한 개피에 먼 훗날을 내다 보시는듯한 평온한 표정, 집필하시는 동안의 모습은 내 마음 한구석을 참 든든하게 메꿔 놓는다. 좋은 곳으로 가시었기를.. 부디 저 세상에서는 고통스럽지 않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만을 갖게 되시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