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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며, 미국 소설계의 거장인 유명한 코맥 매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책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소설을 직접 읽어보진 못했기 때문에 유명한 베스트셀러에 대한 기대치만을 가지고 로드를 만날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만났던 로드는 나로 하여금 많은 끈기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잿빛 풍경으로 꽉 채워진 책의 도입부의 풍경에선 죽음보다 더한 끔찍한 세계를 내 상상속에 그려주었고, 속이 타들어가는듯한 갑갑함을 느끼며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이내 난 인내에 한계를 느끼고 말았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아직 이처럼 지독하고 고약한 글을 만나지 못했었다. 도대체 책을 쓰는 작가는 읽는 사람들의 입장도 좀 고려해야 되지 않는가..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작가도 존재하는것이 아니냔 말이다. 지독하고 고약하다란 표현이 아주 딱 들어맞던 책이 바로 로드였다.
지난 달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이유로 난 코맥 매카시에 대한 첫 인상이 좋을수가 없었다. 이렇게 암울하고 우울하고 재미없는 소설을 만들수도 있구나.. 더군다나 이런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니.. 어이상실이었고, 그의 소설에 대해 내 맘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좀처럼 집중할 수 없어서 다른 책들을 읽으며 어수선해진 맘을 가라앉히는 동안 로드는 쳐다 보지도 않았었다. 무엇때문에 책을 가까이 대할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건지.. 지금 생각해보니 코맥 매카시만의 특유한 필력의 힘이라 보여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생각난 김에 조금씩 읽기 시작했는데 100페이지를 넘어갈 무렵부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온통 로드생각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세상이 불 타버리고, 살아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없다. 잿빛으로 물들어버린 세상 위에 덩그러니 어린 소년과 아버지가 있다. 소년과 아버지는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아 생존을 위해 쉬지않고 걸어야 했으며,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아야 했고, 간혹 등장했던 살아 남은 다른 사람들은 미쳐가며 살아남기 위해 결국 사람을 양식으로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만을 의지한 채 계속 길을 걷는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한 가지도 없다. 온 세상은 모두 불타버리고, 겨우겨우 끼니를 때워가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남자와 아이의 모습은 위태롭게만 보이고.. 그런 상황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절실하다는 말의 뜻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듯 보인다. 만일, 남자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혹은 아이에게 남자가 없었다면.. 잠시동안이지만 생각만으로도 너무 비참하고 마음이 힘들어 진다.
이런 암울하고 지독한 세상을 그만의 스타일로 표현해낸 작가에게 처음엔 원망의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가 거장이란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그를 몰랐을 때는 이해하기 힘들어서 싫었지만, 책을 다 읽은 후의 지금은 보석과 같은 존재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책의 내용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홀로 두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에서 코맥 매카시가 내게 원했던게 바로 이거였구나.. 란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눈물로 대답해야 했다. 비로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소년에게는 그 어떤 고난보다 힘겨운 일이었겠지만 다행스러웠던 일은 소년에게는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며 그 암흑 천지속에 혼자 남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말이 참 다행스럽게 보였다. 제 3의 인물이 소년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줄테고, 또 소년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이 소설이 막을 내린다는 사실만으로 이제야 한시름놓고, 한 숨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아 속이 다 후련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