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 - 실천문학의 시집 37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4
도종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시에 담아냈던 도종환님의 두번째 시집이다. 그 슬픔이 2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너무 가슴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에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한참동안이나 가슴이 먹먹해진 기분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1984년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대표작인 접시꽃 당신을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났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등의 시집과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등의 산문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시집은 발간되었던 당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기에 어린 학생이었던 나도 부모님께 받았던 용돈을 조금씩 모아 구입했었지만 이번 가을 문득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책장을 뒤져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책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구입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는데 예전 그 느낌 그대로 전해지는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접시꽃 당신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너무나 유명한 탓에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시를 읽으면서 그 때 봤던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또렷이 기억이 나기도 했다.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의 교사인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며 시부모님을 모시는 순박한 아내, 그리고 집 마당에 활짝 펴 있던 접시꽃...

내 기억으로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을 사랑하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삶의 희망이었던 가족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의 아내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행복했던 가족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일이 아닐까?
그 슬픔과 그리움을 삭히며, 세상에 모든 것들, 우리가 사소하게 지나쳐 버렸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시의 주제가 된다. 길가에 핀 꽃들, 하늘에 떠가는 구름, 풀 잎 한포기...
시집을 펴자마자 내가 평생을 마음에 품어 두었던 접시꽃 당신이 눈에 들어온다.
내 아픔을 시로 표현해내었던 그의 속깊은 이야기를 그냥 풀어내듯 써내려간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읽어 보는 시의 느낌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그의 진솔한, 가식없던 그의 느낌 그대로를 이 시집에 담아내었기 때문에 시집을 보는 누구라도 그의 진실한 마음과 상처를 그대로 느낄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아픔과 그리움, 사랑과 남겨진 자의 몫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해 냈던 도종환님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였던 접시꽃 당신을 이 가을이 가기전에 다시 접할수 있어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접시꽃 당신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접시꽃 당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꽃씨를 거두며 등이 있다.

 

접시꽃 당신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꽃씨를 거두며            -도종환-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
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
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
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
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
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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