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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6월
평점 :
FEALAC 독서마라톤을 준비하며 중국계 작품을 찾아보던 중 알게된 켄 리우의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의 작품이라 대상작은 아니어서 독서마라톤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기에 읽어봐야지! 하고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중, 이 작가의 신작 <은랑전>의 서평단 모집 소식이 들려오지 않던가! 바로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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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이라고 소개하지만, 역사 소설처럼도 읽힌다. 단순한 SF가 아니라 탄탄한 세계관과 과거 동양의 역사를 소재로한 이야기가 많아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더군더나, 한국인인 나로써는 동양의 역사와 그 안에서 되풀이되던 사회적 구조, 사건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도, 당나라 시대의 중국,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 그리고 머나먼 미래를 이 작가는 종횡무진한다. 그러면서도 그 엄청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차이가 이질감 없이 구현된다. 심지어 그 속에 판타지적 요소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꼬집고 역사 속에 반복되는 인류의 실수들을 녹여내어 서술하기까지 한다. 정말 단순한 SF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 생각할 것이 훨씬 많은 글들이다.
미래를 다루는 이야기에서도 과거를 보는 느낌,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에서도 미래를 보는 느낌이 물씬 난다. 인터넷 세계의 익명성의 유해함, 전쟁 난민,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 미지의 공간을 향한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작가의 쫄깃한 문체와 그 세계의 구현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있고, 그 중 4개의 작품이 특히 좋았다.
먼저, <혼령이 돌아오는 날>. 스포일러가 될까봐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겠으나, 우리의 과거와 역사에 대해 다시금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왜 우리의 과거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그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특히, 역사와 유물학에 나름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진정한 아티스트>가 그 다음을 잇는다. 지금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AI의 창작물과 인간의 입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전 서평한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에서도 이 관련 내용이 인상깊었는데, 최근에 그 내용을 읽어서인지 꽤 곱씹으며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AI의 창작이 인간의 창작보다 뛰어나다면, 인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은둔자-메사추세츠해에서 보낸 48시간>은 미래,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로 변해버린 과거 육지였던 곳을 답사하며 글을 쓰는 에세이 작가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진정 누구일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미래에도 그 모습만 변화할 뿐, 끊이지 않는구나, 싶었다.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것은 바로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발현'을 하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던 세 여성이 모여 헤쳐나가는 모험기가 너무 재밌었고, 앞으로의 그들이 함께할 미래도 너무 기대되었다. 읽으면서 어째서인지... <헝거 게임>이 생각났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물 중 하나라 이 단편이 더 좋았을지도? 후속작이 있었으면 좋겠다. ㅎㅎ
이 외의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겹치는 것 없이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소재로 한다. 정말...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못 베길 정도. 평소 SF 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추천이고, 의외로, 역사를 좋아한다 해도 재밌게 읽을 것 같다! 정말 재밌는 책임이 틀림없다...
이 책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