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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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 몇 권은 되고도 남는다는 할머니들을 가끔 본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소설이 아니라 역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나라의 역사 말이다. 「토지」(박경리/ 마로니에북스)의 최서희처럼,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이 쓴「개구리」의 주인공 ‘완신’도 그렇다.


 완신은 1937년생으로 팔로군 군의관 아버지 덕분에 의학 공부를 해 17살에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공산당 당원이었고 미인으로 대범한 성격까지 고향 마을인 산둥성 가오미 현의 자랑이었으나 약혼자가 타이완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었다. 완신의 운명은 1971년 중국의 한 자녀 국가정책 ‘계획생육’이 시작되면서 격렬해졌다. 개인보다 국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완신은 적극적인 임무 수행으로 마치 전쟁을 치르듯 법을 어긴 임산부를 찾아내고 중절 수술을 감행했다, 그녀는 2,800여 명에 이르는 아기를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완신은 실제로 지은이 고모다, 소설의 배경인 가오미 현은 둘의 고향이다. 지은이는 1980년대부터 고모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산부인과 의사인 고모 얘기에 빠질 수 없는 ‘계획생육’에 대한 고민으로 망설였다고 한다. 계획생육은 인구를 계획적으로 조절한다는 뜻으로 문명사회에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중국의 수많은 가정에 고통을 주었고 서방 국가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고모가 주인공인 '사람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구성은 편지와 극본으로 정했다.


 모두 네 통의 편지는 무척 길다. 화자인 ‘나’는 따옴표 없이 말을 하듯이 술술 그러나 상세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향 사람들과 고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이야기는 ‘나’가 50대로 접어든다. 그새 고향은 변했다, 먹을 게 없어 석탄도 갉아 먹던 시절에서 시장에는 신기한 채소와 과일들이 오색찬란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 완신 고모도 변했다. 아이 울음소리를 닮은 개구리를 무서워하고 자신이 죽음으로 몰고 갔던 엄마와 아기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점토로 인형을 만들고 그들을 위해 축원을 하는 일이 70살이 넘은 고모와 고모부가 요즈음 하는 일이다.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최근 중국 정부에 벌금 13억 원을 냈다. 바로 한 자녀 정책을 어겼기 때문. 2남 1녀를 둔 그가 낼 벌금을 416억 원이라고 계산한 사람도 있다니 정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개구리」는 소설로만 읽기에는 벅찬 부분도 있다. 때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사실상 이야기 결말인 극본에서도 벌을 받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옮긴이는 지은이를 ‘야성과 광기의 이야기꾼’이라 칭하며 “소설은 인성을 묘사할 뿐이며 감정을 묘사해야만 더욱 풍부해지고 영향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지은이 말을 전했다. 내게 지은이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다. 소설이니 ‘사람’만 보는 일로 만족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과 관련된 무엇에 대한 생각을 더 해야 할까 망설일 때 “인생 최대의 즐거움은 바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이 탄생하는 거야. 그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네 생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거잖아.”(399쪽)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기억될 말과 함께 사람과, 사람과 관련된 생각은 좀 묵혀야겠다. 아주 긴 편지를 읽느라 힘도 빠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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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 과학과 친해지는 책 8
김연희 지음, 홍수진 그림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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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시작부터 눈을 기다리는데 좀체 소식이 없다. 눈 내린 창덕궁 후원이 궁금해서 예약도 해두었는데 말이다. 작년, 봄과 가을에 창덕궁을 다녀왔다. 봄에 후원을 찾았을 때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가을엔 단풍을 즐기며「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서해문집 / 2013)을 떠올렸다. 지은이는 복잡한 도시인 서울에서 숲과 계곡, 멋진 집을 볼 수 있는 창덕궁이 있어 서울 사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창덕궁은 정전인 인정전보다 후원이 더 유명한 곳인데, 이번 책 주제는 ‘우리 과학’이다. 고궁에서 만나는 과학이라니 새롭다.


 ‘우리 과학’이란 전통 과학이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시작됐고 서양 근대 과학이 우리에게 전해진 건 19세기 말이라 서양과의 구분을 위해 ‘전통 과학’이라 부른다는 뜻이다. 서양과 우리의 같은 점은 과학이 자연을 이해하는 큰 틀이라고 생각한 일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1405년에 짓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7년에 다시 지어 약 300년간 왕이 나랏일을 보던 정궁으로 쓰였던 창덕궁 곳곳에는 우리 조상들의 과학과 기술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서양 과학의 눈으로는 찾기 어려운 보물들을 찾고 싶다면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배산임수’에 걸맞게 자리 잡은 이야기로 ‘자연 속에 지은 궁궐’이다. 2부는 궁궐 안에 사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활공간을 다룬 ‘조상들의 지혜가 빛나는 궁궐’이고, 3부는 왕의 쉼터였던 ‘아름다운 정원, 후원’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걷다 보면 지나게 되는 금천교 밑의 무지개 기둥 다리가 600년을 버틸 수 있는 이유와 마이크와 조명이 없던 시절에도 최고의 무대였던 인정전에 얽힌 이야기는 마법같이 마음을 파고든다. 후원 입구에서 부용정을 향해 내려가면 탁 트이는 전망과 시원한 바람을 맞는데 그 역시 조상들의 과학이었다니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부용지를 걷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앙부일구’는 9쪽에 걸친 설명을 읽다 보면 관측과 수학, 천문학에 탁월했던 전통 과학에 대한 존경심과 권위만큼이나 막중했던 왕의 일에 안타까움도 든다.


 자료 사진과 어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그림까지 넉넉해서 글은 많지 않다. 하지만 허투루 읽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마음이 가는 곳부터 읽으면 되는 책이지만, 그냥 넘어갈 부분도 없다. 그러니까 쪽수에 비하면 알토란같은 책이다. 창덕궁을 가기 전에 미리 읽어도 좋고 다녀와서 읽거나 갈 때 지참하고 가는 방법도 추천한다. 두고두고 틈틈이 꺼내본다면 ‘우리 과학’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넘어 현대 과학을 보는 눈도 커질 수 있다. 부지런히 한 번 더 읽어두고 올겨울에 눈이 푸짐히 쌓인 창덕궁 볼 날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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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이야기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2
박정애 지음 / 단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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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보다 작가에게 끌려 책을 고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정애 작가도 그렇다. 2012년 여름, 조선조 여인이 쓴 내방가사인 ‘덴동어미 화전가’를 소설로 쓴「덴동어미전」(한겨레 / 2012)를 읽고 작가 만남을 다녀왔다. 그때 작가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고, 엄마로 직장 일로 공부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덴동어미’이야기가 힘이 됐다며 위안을 나누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환절기」(우리교육)는 2005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에 읽었다. 책을 읽다가 멈출 수 없기는 마찬가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홀로된 수경이의 고단한 삶이 여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흐뭇했다.


「첫날밤 이야기」도 전작들과 비슷한 울림이 있다. 다른 점은 단편집이라는 것뿐. 표제작 ‘첫날밤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 주인공 작은 아기가 박실이 되는 과정과 험난한 시집살이를 겪어내는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정오의 희망곡’은 요즘 청소년들이 읽으면 공감 백배할 내용이다. 성적에 집착하는 아빠 덕분에 삶이 힘든 중학생 이야기를 대중가요와 버무려 놓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살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넌지시 건넨다. 가장 불쌍한 주인공은 ‘젖과 독’의 세자. 열세 살 세자가 하고 싶은 건 늦잠 자기, 친구와 지치도록 놀고 함께 밥 먹는 일과 유모의 젖을 만져 보는 일이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세자의 예를 지키고 온종일 공부하는 일뿐이다. 진짜 괴로운 이유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이라니 조선 시대 세자의 하소연이 오늘과 다르지 않아 멈칫했다. 이 외에도 세 편이 더 있는데 주인공이 힘들다는 공통점은 같다.


 박정애 작가에게 별명을 붙이는 일이 허락된다면 이 시대의 ‘전기수’라고 부르고 싶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가의 소설은 읽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누군가 곁에서 들려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은 그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맛깔스럽게 때론 듣는 이의 애간장을 태우는 재주도 있으니 전기수가 딱 맞춤하다. 읽은 이야기보다 들은 이야기는 효과가 더 큰지 작가의 소설은 공감이 크다. 그래서일까? 살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내려는, 사람값을 하려는 단편집 주인공들의 수고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슬그머니 내 안에서도 어떤 힘이 느껴진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독자 여러분의 삶에 아침이슬 같은 생기 한 방울, 더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에게 내게는 ‘들판의 아침 이슬만큼’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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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7 : 생명은 왜 성을 진화시켰을까? - 성의 탄생, 우주.생명.인류 문명, 그 모든 것의 역사 빅 히스토리 Big History 7
장대익 지음, 홍승우 그림 / 와이스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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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제목이 두 개다. 자세히 보면 「빅히스토리」는 시리즈 제목인 걸 알 수 있지만,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이 곧 생각나면서 빅히스토리는 뭘까 싶다. 그것은 137억 년 전부터 오늘까지의 인간 역사를 지구와 전체 우주 역사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려는 융합 교육으로 요즘 가장 핫한 학문이다. 아주 오래전 역사부터 시작하니 당연 빅스토리가 태어날 예정이고 빅스토리는 또한 빅퀘스천을 동반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은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서 삶의 태도에 변화를 이끌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점검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힌다.


「생명은 왜 성을 진화시켰을까?」는 그중 일곱째 책. 지은이는 진화학자로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소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양을 제시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이다. 가끔 등장하는 익숙한 그림은 가족만화 「비빔툰」으로 유명한 홍승우가 그렸다. 지은이는 빅스토리를 전달하면서 ‘입말’을 선택했고, 그린이는 색깔 있는 그림을 선보이고, 자료 사진 역시 천연색이라 책 읽기에 큰 도움이 된다.


 질문으로 시작한 책은 답을 향해 달려간다. 과정 중에 만난 이야기는 ‘성은 15억 년 전에 탄생했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차이를 만듦. 수컷 공작새의 우아한 깃털, 수컷 바다표범의 엄청난 덩치와 인간 남자들의 유머와 선물 공세는 모두 짝짓기를 위한 행동. 남자가 S라인 몸매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 여자가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남자와 여자의 반응이 다른 이유. 계부모에 의한 자식 살해 위험이 친부모일 때보다 70배 이상 높은 이유.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처럼 사랑을 나누는 보노보’ 등이다. 모두 흥미롭지만, 죽음도 ‘성의 진화’라는 결과는 압권이다. 이는 생명이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할 방법은 자식을 낳는 일뿐이라 치열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일하면서 산다는 뜻이다.  생명이 성을 진화시킨 이야기는 알수록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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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진화학자 장대익의 인간 탐구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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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부터 읽어보면 “우리는 한때 우리의 운명이 별들 속에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우리의 유전자 안에 있음을 안다.”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이는 오늘날 과학의 중요성을 명료하게 말하는데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노벨상 수상자 제임스 왓슨의 말이다. 또, 지은이는 21세기의 교양은 인간 생활과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교수, 진화학자와 과학철학자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공감과 소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양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고 밝힌다. 이력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학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KAIST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공부에 흥미를 잃어 방황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진화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에야 자신의 삶을 바꾸는 호기심과 열정을 만났다니 말이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은 ‘탐구, 따라 하는, 공감, 신앙 그리고 융합하는 인간’이라는 다섯 가지의 진실로 나눈다. 그중 ‘우리는 탐구하는 인간이다’를 살펴보면 고민하는 힘을 키울 여유를 갖지 못한 과학 영재들의 현실을 지적하고, 훌륭한 과학자에게도 성실이 제일 필요한 덕목이라 말하고, 소통 없는 연구는 쓸 데도 없고, 과학의 본질은 논쟁이고, 호기심과 열정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지은이 글은 쉽고 재미있다. 프롤로그의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해 과학자의 시각과 지식, 분석이 살아 있는 글을 나와 내 주변의 실제 경험들이 생생하게 녹아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는 자신의 글쓰기 기준을 성실하게 수행한 덕분이다. 따라서 책 읽기를 마칠 즈음이면 생각하는 방식에 전과는 다른 차이를 느낄 수도 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온 힘이 과학에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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