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 과학과 친해지는 책 8
김연희 지음, 홍수진 그림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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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시작부터 눈을 기다리는데 좀체 소식이 없다. 눈 내린 창덕궁 후원이 궁금해서 예약도 해두었는데 말이다. 작년, 봄과 가을에 창덕궁을 다녀왔다. 봄에 후원을 찾았을 때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가을엔 단풍을 즐기며「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서해문집 / 2013)을 떠올렸다. 지은이는 복잡한 도시인 서울에서 숲과 계곡, 멋진 집을 볼 수 있는 창덕궁이 있어 서울 사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창덕궁은 정전인 인정전보다 후원이 더 유명한 곳인데, 이번 책 주제는 ‘우리 과학’이다. 고궁에서 만나는 과학이라니 새롭다.


 ‘우리 과학’이란 전통 과학이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시작됐고 서양 근대 과학이 우리에게 전해진 건 19세기 말이라 서양과의 구분을 위해 ‘전통 과학’이라 부른다는 뜻이다. 서양과 우리의 같은 점은 과학이 자연을 이해하는 큰 틀이라고 생각한 일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1405년에 짓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7년에 다시 지어 약 300년간 왕이 나랏일을 보던 정궁으로 쓰였던 창덕궁 곳곳에는 우리 조상들의 과학과 기술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서양 과학의 눈으로는 찾기 어려운 보물들을 찾고 싶다면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배산임수’에 걸맞게 자리 잡은 이야기로 ‘자연 속에 지은 궁궐’이다. 2부는 궁궐 안에 사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활공간을 다룬 ‘조상들의 지혜가 빛나는 궁궐’이고, 3부는 왕의 쉼터였던 ‘아름다운 정원, 후원’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걷다 보면 지나게 되는 금천교 밑의 무지개 기둥 다리가 600년을 버틸 수 있는 이유와 마이크와 조명이 없던 시절에도 최고의 무대였던 인정전에 얽힌 이야기는 마법같이 마음을 파고든다. 후원 입구에서 부용정을 향해 내려가면 탁 트이는 전망과 시원한 바람을 맞는데 그 역시 조상들의 과학이었다니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부용지를 걷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앙부일구’는 9쪽에 걸친 설명을 읽다 보면 관측과 수학, 천문학에 탁월했던 전통 과학에 대한 존경심과 권위만큼이나 막중했던 왕의 일에 안타까움도 든다.


 자료 사진과 어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그림까지 넉넉해서 글은 많지 않다. 하지만 허투루 읽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마음이 가는 곳부터 읽으면 되는 책이지만, 그냥 넘어갈 부분도 없다. 그러니까 쪽수에 비하면 알토란같은 책이다. 창덕궁을 가기 전에 미리 읽어도 좋고 다녀와서 읽거나 갈 때 지참하고 가는 방법도 추천한다. 두고두고 틈틈이 꺼내본다면 ‘우리 과학’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넘어 현대 과학을 보는 눈도 커질 수 있다. 부지런히 한 번 더 읽어두고 올겨울에 눈이 푸짐히 쌓인 창덕궁 볼 날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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