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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조만간 대한민국의 좋은 점, 아니면 한국 문화의 우수함을 다룬 책을 읽든지 강연을 들어야겠다. 연속해서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책들을 읽었더니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감정상태도 매우 불편해진다. 어째 이놈의 나라는 이렇게 잘못된 점이 많은건지..
2007년 한국 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쓴 책이다. 목차를 둘러보면 알 수 있겠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검찰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삼성에 입사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때, 그리고 비리 고발 이후 삶의 모습까지를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라는 단어는 결코 좋은 느낌의 말이 아니다. 비리를 저지를 것만 같고, 정치권력과 결탁해 부당한 이득을 얻어낼 것만 같다.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러한 심증을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여러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여러 나쁜 짓들이 소개되지만, 글쓴이가 생각하는 가장 근원적인 나쁜 짓은 바로 '비자금 조성'이다. 그리고 그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 중 한 가지가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방법 말고도 수많은 방법이 동원되겠지만..
354쪽) 전례를 따른다고 돼 있는 '샘플비'가 거래금액의 15.8% 가량을 차지한다. "100 + 20 = 100 + 1 + 19"라는 표현도 나온다. 여기서 '1'은 삼성물산이 가져가는 수수료, '19'는 '샘플비'다. 샘플비가 바로 비자금이다. 거래금액을 120%로 부풀린 뒤, 적정가격(혹은 원가)과의 차액 가운데 20분의 19가 비자금이 된다. (...) "100(원가), 19(샘플비 반송), 1(은행수수료 포함 총수수료)"이라는 내용이 옆에 기재돼 있다. (...) '샘플비 반송'은 부풀려진 거래금액의 15.8%(부풀려진 가격과 원가와의 차액 가운데 20분의 19)인 비자금을 삼성 비서실(나중에는 구조본, 전략기획실)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위의 인용문은 1994년 삼성물산 영국 법인과 삼성 전관(현 삼성SDI) 두 회사가 주고받은 문서 중 일부이다. 삼성전관은 필요한 물품을 삼성물산 영국 법인으로부터 수입하는데, 이 때 원가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 수입한다.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은 삼성물산 영국법인은 그 중 19%에 해당하는 금액을 다시 한국에 있는 삼성 비서실로 돌려보낸다. 이 과정을 통해 삼성 비서실(=구조본=전략기획실)은 어마어마한 금액의 비자금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비자금은 삼성이 우리나라 각계의 사람과 조직을 '조련'하는 데 쓰인다.
삼성 비리의 실체,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러 국가기관들의 모습, 이건희 일가의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각종 언행들이 이 책에는 다양하게 소개된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건희 회장이 가장 좋아한다는 정장 브랜드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셔츠가 1500만 원, 코트가 5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옷이 저렇게까지 비싸질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또 그것을 '즐겨'입는 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또한 이서현씨는 제일모직 내부 의류기획과정에서, 100만원 '짜리' 옷을 대체 누가 입냐고 말했다고 한다. 비싸서 안 입는다는 표현이었으면 좋겠지만, 그 반대라고 한다.
글쓴이가 기본적으로 법률가이기 때문에 글이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다행히 전반적으로 읽기 쉬운 편안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과 삼성 SDS BW헐값 발행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을 비롯한 몇몇 부분에서 약간 어려운 용어가 쓰이는데, 법률 용어나 검찰 조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로서는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좀 건너뛴 부분도 있다ㅜㅜ)
마지막 부록인 천주교 사제단의 기자회견 전문을 읽다보니, 본문을 읽을 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날짜'들이 새삼스럽게 내 눈에 들어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비리 고발 사건은 바로 2007년 10월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때 대체 나는 무얼 하고있었던가.... 내가 기억하는 2007년 10월의 모습은 오로지 대학교 축제와 중간고사뿐이고, 11월로 넘어간다고 해도 동기들과 함께 놀러다닌 기억뿐이다. 지금의 내 시선과 지적 역량으로(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때의 나를 재단해서 당시의 나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합당한 태도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이런 사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넘어갔던 내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저 [김용철이라는 사람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같이 삼성의 내부 비리를 고발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직접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 직접 겪지는 못하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각종 사건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의롭지 못한 일들과 마주쳤을 때, 외면해야 할까 맞서야 할까.
읽은 기간 : 2011 01 20 ~ 2011 01 21
정리 날짜 : 2011 01 22
더 읽어볼 책 :
프레시안 기자들이 펴낸 또다른 삼성 비리 고발 책(알라딘 품절ㅜㅜ)
삼성을 생각한다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김용철 변호사가 참여한 또다른 책들
이런 책도 얼마 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