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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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우석훈의 인터뷰집을 읽고 나서, 참여정부에 대해 시각교정을 가능하게 해준 책이라는 말을 했었는데,(바로가기) 이번에도 아주 크게 '당했다' 

바로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목차를 살펴보거나 209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재벌 시스템의 정당성과 유효성, 신자유주의 및 주주 자본주의의 본질과 한국에서의 전개 양상 및 파장, 자본과 노동이 서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현황, 국가라는 조직이 유명무실화되어가는 우리의 현실과 그 결과, 소위 진보-개혁 세력이 겪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혼선의 상황을 점검하고 따져'보는 그런 책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회과학서적 중에서, 재벌의 유용성과 박정희 시개 경제개발을 이렇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설명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장하준 교수의 다른 책을 본다면 역시 그런 입장을 만날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이 책이 장하준 교수의 첫 번째 책이다.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이 논의를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이론적 사실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야 성립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52쪽)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한 내용이 저것이며, 마르크스는 저러한 잉여가치의 생산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이며 그 잉여가치를 착취해가는 자본가들을 '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아군과 적의 구분에 앞서서, 자본주의가 구동되는 기본 원리에 '착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점에서 박정희시대 경제논의는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하준과 정승일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 걸까?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의 지배층과 실패한 나라의 지배층 간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바로 착취로 빨아들인 부를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착취 때문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착취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53~54쪽) 이거 참... 이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적지 않은 저개발국가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심한 독재와 탄압을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국가들 중에 우리나라 만큼 경제적으로 번영에 성공한 국가는 없다. '미국의 경제 원조라면 칠레도 많이 받았고, 아프리카에는 한국보다 더 많이 받은 나라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경제 개발에 실패했어요. 토지 개혁이든 원조든 주요한 조건들이니까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무관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조건들 때문에 '경제 발전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죠.' 사실 나도 저렇게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양한 논거가 더 제시되지만, 책 말미에 나오는 핵심적인 주장을 살펴보자 '박정희 체제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이유는 독재(=반민주)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긍정하는 점은 그 비자유주의적 측면이지, 반민주주의적 측면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비판 역시 경제, 사회, 노동, 복지 등의 개혁 정책에서 나타나는 그 자유주의적 측면을 겨냥한 것일 뿐 정치, 외교, 국방, 사법 분야에서의 개혁 정책에 나타나는 그 민주주의적 측면이 결코 아니다.'(237쪽)  

맞는 말인듯 하면서도 얼핏 수긍하기 힘든 면이 있는 주장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관계를 생각해봐야 할 차례이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동반하며 양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 자유 민주주의자들의 신조와는 달리, 양자는 서로 분리되며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천적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가령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반드시 민주주의의 옹호는 아니다. 1929년 대공황의 후폭풍 속에서 탄생한 나치 정권과 뉴딜 정부는 둘 다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포기한 점에서는 같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는 정반대였던 것처럼 말이다.(236쪽) 쪽 수를 보시면 알겠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을 순서를 달리해 써봤다. 이제부터 우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할 때, 조금 더 냉정하고 세밀한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자유주의라는 이름은 정치,언론,집회 등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자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 그 경우,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이론이 되어버린다. 경제 분야에서 돈의 권리를 무한정 인정하는 자유주의와, 정치와 생활 분야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경제개입을 반대하는 '개혁 진영'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로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 심리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힘 있는 정부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반사적 거부라니까요. 박정희 정부가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힘을 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고정관념화되어 버린 겁니다.' (202쪽) 그렇다면 장하준과 정승일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찬성하는 입장이 되고, 그들은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관치 혹은 정부의 역할을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자유주의 내지 신자유주의의 입장입니다. 즉 '작은 정부가 아름답다.' '관료제는 나쁘다.' '규제는 나쁘다.'는 건데요. 문제는 국가의 역할과 관료주의를 부인하면 그 대안이 시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정리해본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에 대한 논의와 그에 따르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 점검, 그리고 국가 개입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전체적으로 아주 신선하고 유익한 경제적 내용으로 가득차있다. 원래는 모든 내용을 다 아우르는 독후감이자 요약을 쓰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다 담고자 욕심부리다보니 지쳐버렸다. 이쯤에서 마무리지어야겠다ㅜㅜ. 

한국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런데 만일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심정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내가 그렇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편'의 시각에서 '반성'하는 것과 '제3자'의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에.. 

 

 읽은 기간 : 2011 01 09 하루 

정리 날짜 : 2011 01 12 ~ 2011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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