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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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0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해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는 지방선거를 실시했고, 군사적으로는 천안함 사태(정치적으로도 이용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곧 다가올 G20정상회담, 서울에선 시내버스의 대형사고가 두 건, 연예계에서는 각종 온라인상의 논쟁부터 병역비리까지.. 두 달 남은 2010년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조금은 겁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우리 사회를 억누르는 강력한 제도 중 하나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사립대학 중 최고 학벌인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김예슬씨가 자퇴를 하고 대학 체제에 대한 거부 선언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이슈가 그렇듯, 고려대 자퇴 '떡밥'은 몇 달 지나자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논쟁거리에서 탈락한 지도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모니터 화면으로 대충 넘겨봤던 대자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김예슬씨의 분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분이 쓰신 리뷰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예비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든지 거의 다 알고 있을법한 문제들이다. 

같은 20대인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모두가 김연아일 수는 없다.  

김연아 선수.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몇몇 위인(위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중 한 명이다.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김연아 선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왠지모를 슬픔을 느낀다. 김연아와 같은 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서...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꿈을 쫓아 이 악물고 노력할 때, 나는 레벨 업의 꿈을 쫓아 이 악물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김연아 선수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할 때, 나는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대학 동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내 삶을 이렇게 살았으니 누굴 탓할 수는 없다. 단지 딱 하나 탓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를 꿈꿀 수 없게 길들인 우리의 학교와 교육체제뿐이다.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유일한 미덕인 한국 교육 체계 아래에서,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은 다른 꿈을 꿀 여유가 없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88만원 세대라고 부르지 마라 

제목은 공감했지만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내용에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대가 스스로 자기 세대를 자칭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낸다면 좋겠다. 88만원세대라는 명칭은 분명 우리 세대가 아닌 우석훈 박사의 명명이고, 우리와 우리 윗 세대는 그 명칭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마저도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슴 뛰지 않는다고 가슴 치지 말자 

100% 공감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한비야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자 한비야에 대한 비판 – 과대평가된 시대의 아이콘(바로가기)라는 글을 읽은 후 기본적인 반감이 생겼고, 무릎팍도사 방송과 한비야씨의 최근작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은 후 안티 한비야로 내 마음을 굳혔다. 한비야씨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슴 뛰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아니 거의 강요에 가깝다. 가슴 뛰는 삶을 살지 못하고 꿈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해내라고 계속해서 강요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해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한비야씨는 그걸 해냈다. 그 점에서 한비야씨는 분명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더하여 한비야씨의 삶을 지켜보면 정말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런데 방송이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그녀의 말 속에서, 한비야씨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보통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나요? 하기 싫어서 안 하는게 아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서 못 하는거다. 그걸 접하는 대다수의 20대들은 (특히 여성들) 한비야씨를 롤모델삼아 자신의 삶에도 가슴 뛰는 무언가가 생기길 바란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따라오는 것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또 하나 늘어났다는 자조섞인 웃음뿐이다.  

우리에게 더이상 가슴 뛰는 삶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 방식대로 살아야만 가슴 뛰는 삶이 아니다.   

 

-어떻게 꿈이 직업일 수 있는가 

여기에서 나와 김예슬씨의 입장이 갈라선다. 나는 직업도 충분히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예슬씨가 자신을 대표하는 말로 내세우는 '래디컬'한 면모가 되려 이 시대 대다수 20대를 한순간에 잉여인간으로 만들어버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자본주의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라 할지라도, 개인 개인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단순히 '오염된 꿈'이나 '주어진 몇 개의 잘 나가는 직업에서 꿈을 찾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앎과 지혜가 일천해 더이상의 반박이 힘들다. 다만 심정적으로는 엇갈리고 있다는 걸 확신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잘 읽은 책이다. 나중에 2010년을 돌아봤을 때, 김예슬씨의 대학 거부 선언이 우리 사회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을 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한 마디는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한 문장이다. 

"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읽은 기간 : 2010년 10월 22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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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추가 

-[커버스토리]2010년 대한민국 20대의 희망찾기 (위클리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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