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마저도 코니 윌리스 걸작선 2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저번에 읽은 코니 윌리스의 화재감시원은 여러모로 기분 좋은 독서를 선사해 주었기에 이 책의 다음 권인 여왕 마저도를 읽는 데는 딱히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영국 여왕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지만, 소설에서 여왕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책도 화재감시원과 같이 코니 윌리스의 중, 단편을 모아 놓은 선집이다.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작가의 단편이고 그 중에서도 좋은 소설만을 선택한 선집이라 하나 같이 좋은 소설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화재감시원의 소설들 보다 이 책의 소설들이 더 좋았다. 중편 3편과 단편 2편이 수록 돼있는데, 단편들이 하나같이 명랑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라 내 취향과 맞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인, 모두가 땅에 앉아 있는 데는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외계인의 반응을 이끌기 위해서 각계의 과학자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탄생하지만, 워낙 일을 개판으로 처리해서 외계인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외계인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러 장소로 끌고 다니지만, 역시 성과는 미미한 상태에서 쇼핑몰을 방문한 날. 외계인이 자리에 주저앉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외계인들이 몇 달 동안 아무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처음으로 반응을 한 거라고 생각해봐라 그것만으로 대단한 반향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최초의 반응을 힌트로 주인공이 어째서 외계인이 반응을 했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여왕마저도는 페미니즘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세계는 여성이 생리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신약의 개발로 여성이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게 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를 숭고하게 여기는 집단이 생겨나고 주인공의 딸이 여기에 가입하게 되면서 온 가족들이 모여서 딸이 그 집단에서 탈퇴하도록 설득하는 스토리다짧고 유쾌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여성이 생리를 통제하게 되자. 가족이 모계를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묘사나, 이론은 그럴싸하지만, 막상 실제 생활과는 유리되어 있는 여러 이론들(꼭 페미니즘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에 대한 담론들을 소설의 귀감이라고 할 정도로 훌륭하게 포장되어 있다.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은 런던에 오랜만에 찾아온 남자가 튜브(런던의 지하철)에서 불길한 바람을 느끼고 그 바람의 원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런던대공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작가의 다른 소설인 화재감시원과도 조금은 연결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다룬다. SF소설이라기 보다는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한 사람이 초자연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묘사한 소설이다.


영혼은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19세기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과 H. G 웰즈의 우주전쟁의 소재를 엮은 소설이다. 논문과 같은 형식으로 쓰여 진 소설인데, 영문학에 조예가 없으니 무슨 이야기인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패러디가 가지는 단점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소설인 마지막 위네바고는 개가 살아진 미래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기자의 시점에서 개가 수수깨끼의 질병으로 사라지고 기형적으로 변한 사회를 볼 수 있다. 개가 사라지는 것이 충격적이었는지 애완동물 협회가 비대한 권력을 얻고 동물을 죽이게 되면 중형을 선고 받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뛰어난 소설이 그러하듯 그럴 듯하게 들린다.


매 소설 마다 뒤편에 실린 작가의 후기는 소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작가 본인은 작품론을 논할 생각이 없었겠지만, 이 좋은 소설들이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글을 써온 깊은 관록을 가진 작가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어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소설가는 몇 개의 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장의 벽, 소재의 벽. 주제의 벽이 그것이다. 어떤 소설가는 이 벽을 차례로 돌파하기도 하고 반대로 평생 동안 돌파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코니 윌리스는 이 모든 벽을 돌파하고 장인에 반열에 이른 작가다. SF소설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소설로서도 충분히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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