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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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으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조정래 작가의 신작이다. 대표작인 태백산맥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읽은 바 있고 비교적 최근작이었던 정글만리도 군인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에도 사회적인 흐름이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가인덕에 이번에도 그는 한국의 교육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가지고 나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공부에 미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학창시절에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조정래 작가의 특징은 사회적인 문제를 소설적 형태로 풀어내기 위해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흔히 소설에서 말하는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교사인 강교민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겪는 일단의 사건이 끝나면 다른 인물인 B의 시점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고 또다시 사건이 끝나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새로운 사건이 등장한다.


한국 교육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 덕분에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상황인 사람이 없다. 부모들은 애들 교육에 미쳐있고 애들은 부모의 등살에 밀려서 힘겨워한다. 그것도 아니면, 학교에서 왕따나 은따 같은 치명적인 사건에 직면에 있다. 이 소설만 보면 한국의 10대가 이런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건가 싶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문학적인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작가가 고발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조정래 작가가 요즘 10대의 말이나 생각 등을 묘사하는 것을 힘들어 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예전에 정글만리를 읽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다. 거기에서는 20대간의 연애 장면이 너무 어색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번에도 역시 어색했다. 그러나 일흔 살이 넘은 문학계의 원로가 어린 학생들의 말투를 묘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존경받는 원로로서 여전히 젊은 세대와 호흡하려고 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수십 년 동안 글을 써온 작가의 작품이기에 흡입력 있는 문체란 어떤 것인지 예시를 보여주는 듯하다. 두 권 분량의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문체의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메시지 또한 명백해서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내가 조정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면, 최소한 태백산맥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태백산맥을 읽었고, 조정래라는 작가가 이정도 소설을 쓸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한 작가의 체념을 읽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정글만리를 읽을 때는 이러한 생각은 흐릿해서 형태조차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느꼈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될 목적으로 쓰여 진 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주로 팔리는 작가들이 쓰는 책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쓰면 책이 잘 팔리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유명세+적당한 문체+적당한 소재를 더하면 유명작가라는 것 때문에 책이 어느 정도 팔리고는 한다. 나는 평소에 이러한 작가들을 싫어해 왔다. 그들 덕분에 다른 독자들에게 읽혀야 될 책들이 팔리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책이 그런 목적으로 쓰여 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취재와 노력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 이 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실망감. 그건 내가 태백산맥을 읽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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