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담
김보영 지음 / 아작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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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부터 유독 좋은 책을 많이 읽은 느낌이다. 11일부터 역대급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도 기억에 남는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 작년 12월에는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읽은 권수도 줄어들었다. 그런 와중에 새해에는 유독 좋은 소설을 여럿 읽었다.

 

아작에서 출판된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담>은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멀리가는 이야기>에 수록된 소설이었다. 그 중 <종의 기원담><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작가가 새로 추가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추가해 새로운 책으로 묶여 나왔다. 각 소설이 쓰인 시기는 각각 다르다고 작가는 말한다. <종의 기원담>은 젊은 시절에 쓰기 시작하고 그후 시간이 지나서 완성되었고,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같은 해에 마지막인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는 이 책을 복간하는 과정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작품인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는 앞의 두 작품과도 시간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종의 기원담>은 만약 로봇이 지구의 지배적인 종족이 되었을 때 생명이란 어떻게 증명될 것인가?’라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드라이아이스가 고체(영하80도는 되어야 한다)로 존재하는 세계는 로봇에게는 친숙한 환경일 수밖에 없으며 그 세계에서 생명의 정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존재한다. 모든 로봇은 공장에서 생산되며 활동을 멈춘 로봇은 공장에서 재활용되어 새로운 로봇의 부품이 된다. 로봇 외에는 존재하는 것이 없기에 생명의 정의도 로봇을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주위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이 있기에 생명의 정의는 다양한 생물군을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하지만 <종의 기원담>의 세계에서는 로봇만이 존재하기에 생명의 정의가 굉장히 좁다. 생각이 가능한 로봇만이 생명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간혹가다 등장하는 유기 생물은 로봇 학자들 사이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골칫거리였다. 그리고 한 대학원생 로봇이 그 유기 생물에 주목해 논문을 쓰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 편의 소설은 케이 히스테온이라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시작되어 유기 생물의 발견, 인간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인간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착실히 나아간다. 그리고 미친 듯이 재미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2편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폐쇄된 공간에서 수수께끼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이 일종의 서스펜스를 부여해 주었다.

SF작가마다 김보영, 김보영 연호하는 이유가 있었다. 김보영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볼 때도 이 사람은 최고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번 <종의 기원담>을 읽으며 정말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참신하고,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이 있다니 하며 감탄만 했다. 젊은 시절의 야심과 숙성된 작가로서의 테크닉이 어우러진 최고의 SF 소설집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김보영 작가가 한국에서 SF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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