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의 대명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85
오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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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는 사람들에게 흠모의 감정을 느낀다. 왜냐면 나는 그런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의 몸을 구성하는 언어와 문장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시에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다. 나는 여태까지 많은 책의 리뷰를 써 왔는데 그중 압도적인 대다수는 소설이나 그와 관련된 에세이였다. 시 리뷰는 거의 없었는데 시를 안 읽는 게 아니라. 시를 많이 읽기는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를 수용하는 방식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직선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종류이다. 반면에 시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보통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해석의 관점에서 읽고는 했고,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안의 감춰진 어떤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보통은 시를 쓴 시인의 의도를 찾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그런 해석의 의미로 시를 읽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이해한다. 시인의 의도를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시의 언어를 통해서 독자가 스스로 어떤 것을 느끼느냐가 시를 읽는 일에 더 중요한 것 같다.

오은 시인은 이전에도 여러 권의 시집을 읽어왔다. 언어가 순백하다고 할까. 시를 읽으며 그런 느낌이 든다. <없음의 대명사>의 목차를 읽어보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시의 제목이 모두 그것혹은 그들같은 대명사로 이루어져 있다. 소재가 되는 대명사에 관한 시들이 나온다. 예를 들자면 그것이라는 제목의 시들은 말 그대로 그것을 언어로 다루는 시가 배경이다. ‘우리는 역시 관계에 대한 시일 것이다. 보통 대명사는 수 많은 말을 대신한다.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가 수 많은 의미를 함축한 것처럼. 대명사는 맥락에 따라서 수백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오은은 정확히 그 반대의 것을 해나간다. 함축된 것들을 해체하고 그 의미를 다시 새롭게 해석해나간다. 하나의 실험이지만 문학이나 예술 부분에서 실험적이다라는 말이 난해하다.의 다른 말인 것과는 다르게 오은의 시는 그런 난해함마저 아름답게 느껴진다.

 

새롭고 해석되지 않는 것. 영원히 해석되지 않은 비밀을 품고 있는 문장들을 접하는 경험은 내가 시를 읽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시 리뷰는 사실상 처음 쓰는 것인데 평소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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