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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연구 - 정지돈 소설집
정지돈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평점 :
뭐랄까. 열광하지는 않지만, 신간이 출간되면 나도 모르게 꾸준히 사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가는 바로 정지돈 작가일 것이다. 문단의 이단아라기보다는 정석적인 방식과 개성으로 이야기를 써나가는 작가인데. 처음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한국 문학 근본주의자가 본다면 기함을 내릴 것 같은 소설들이랄까? 현실의 사건과 소설의 사건이 얽히면서 묘한 공명을 만든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이게 무슨 내용일까를 궁금해하면서 읽게 된다. 읽고 나서 이해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래도 읽게 되는 이상한 소설들.
이번 소설집인 <인생연구>는 뭔가 심플하지만, 소설스럽지 않은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제목은 작가의 전작답지 않게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어울리는 제목이고 표지였다. 편집자가 참 작가의 소설을 잘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을 찾아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왕왕있다. 예를 들자면 민트 초코와 같은 것 말이다. 정지돈의 소설은 여러 이야기를 섞어서 전에 없는 맛을 만들어 낸다. 비유하자면 역시나 민트 초코 같은 것. 민트 초코는 대놓고 치약맛이라고 비웃음 당하지만 막상 사 놓으면 안 먹는 사람은 없다. 매니아층도 확실해서 베스킨라빈스 인기맛 순위에도 항상 위쪽에 놓이는 것이 민트초코 맛이다.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 정지돈의 소설은 좋아한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의 전작이랑도 비슷한 결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지식인 소설가가 주인공이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거기에 영화사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어떻게 보면 참 안 어울리는 요소이고 소설집의 작가의 말을 보면 혹자는 그걸 보고 알파고가 소설 쓰는 거 아니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손보미 작가가 번역체라고 욕먹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았을까 한다. <인생연구>의 주인공이나 인물들은 누가 궁금해할까 싶은 지식에 빠삭하고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좋아한다. 솜씨 없는 작가라면 그것을 지루하게 늘어놓겠지만, 우리의 민트초코 아니 정지돈 작가는 그걸 유려하게 늘어놓는다. 마치 SNL코리아에서 주현형과 급식어 대결을 하는 신혜선과 같다고 할까. 이전에는 정지돈의 소설 속 화자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누가 알고 싶을지 궁금한)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피식 웃으며 인정해버린다. 이거 알아서 뭐하느냐고. 그래서 문체가 쉽고 잘 읽혔다. 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으로 바뀌었달까. 유아 살해 서사를 지닌 영상과 대학생을 드디어 돌았느냐고 묘사하는 건 참 웃긴 일이었다. 자기 아들도 못 알아보는 JS도 웃겼다. 우리의 주인공은 참 웃긴 사람이었고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작가가 더 발전하는 걸 보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걸 또다시 느꼈다. 다음 소설도 이런 느낌으로 부탁드립니다. 민트초코 아니 정지돈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