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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장르에 있어서 공포물과 스릴러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공포의 원인이 밝혀지느냐 아니냐이다. 공포의 원인이 설명 가능하다면 스릴러이고 불가능하다면 공포이다. 이것은 마치 SF와 판타지의 관계와도 같다. 한배에서 나온 두 장르는 단순한 몇 문장으로 다른 장르로 평가받을 수 있다.
강화길 작가의 소설들은 이전에 <괜찮은 사람>이나 <다른 사람> 같은 여성 중심의 서사를 펼치는 작가로 인식해 왔지만, 작가의 근 작인 <화이트 호스>를 읽으니 단순히 여성 서사를 반복하고 되풀이하는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진화’를 했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변화하였다. 전작인 <괜찮은 사람>, <다른 사람>은 여성의 일상적 공포를 중심으로 전복된 일상의 풍경을 전시했다면 <화이트 호스>에서 작가는 일상의 전복을 넘어서 스릴러까지 치 닿는 일상의 기괴, 공포로까지 닿는다. 그러니깐 이전까지는 없엇던 ‘비밀’이 탄생한다.
‘비밀’은 스릴러의 필수적인 요소다. 최근에 유행하는 여성 중심의 스릴러 같은 경우에는 완벽한 가정 그러나 거기에 있는 비밀이라는 공식을 끝없이 사용한다. 이러한 스릴러의 유행을 강화길은 ‘살인’이나 범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닌 일상의 풍경. 예를 들면 가족관계의 그림자나 한 인간의 내면 풍경으로 침잠함으로써 다룬다. ‘비밀’은 소설의 등장인물의 과거와 맞닿아 있고 그 비밀이란 사실 가족마다 하나씩은 있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이다. 그러나 강화길은 이것을 ‘스릴러’로 치환한다. <음복>은 그러한 강화길 작가의 ‘비밀’을 가장 뛰어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독특하고 공포스럽고 그러나 과하지 않다. 여기서 과하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누군가가 죽지도 다치지도 끔찍하지도 않다. 다만 한 가족이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기괴하게 보일 정도의 크기. 일상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해 두드러지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음복>을 2020년 한국 소설 중 최고의 소설이라 칭해도 무리 없게 만들 수준이었다.
<오물자의 출현> 한 인간을 재현하는 언어가 얼마나 실체 없는 지에 관한 소설로 읽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젊은 나이에 자살한 배우인 ‘김미진’의 실체를 밝히려는 두 작가가 그녀를 파혜치고 그녀의 삶을 언어로 실체화한다. 하나는 김미진의 가족관계가 상당히 불안정했으며 김미진은 그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김미진 자체가 알코올 중독자인 불안정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김미진이 쓴 소설은 이러한 두 해석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입증한다.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치열하게 대립하던 두 해석이 김미진 본인이 쓴 자전 소설에 의해서 전복되고 결국에는 무화 되는 순간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결국엔 이 소설도 <화이트 호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비밀’을 파해치는 소설이다. 그리고 강화길은 비밀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읽는 이를 당황 시킨다. 마치 진실 따위는 없다고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현실은 추리 소설처럼 명확한 이유나 설명으로 인간을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