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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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독 미스터리 소설 장르가 발달한 국가다. 전국에는 새로운 미스테리 장르의 작가를 선발하는 공모전이 열리며 그 공모전을 통해서 새 작가가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는 이제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하다 못해서 일본 추리 소설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작가일 것이다. 그 외에도 미스터리 분야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 한국에서 베스트 샐러가 되기도 한다. 나오키 상 같은 경우는 한국에도 잘 알려지고 매해 수상하는 작품이 꾸준히 번역되어 한국에도 출판된다. 이 소설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나오키상은 아니지만 그만큼 유망한 미스터리 장르 문학상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했다. 미스터리 강국인 일본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스터리 장르가 발달한 덕에 그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분파를 보유하고 있다. 밀실 살인과 같은 추리 트릭을 소재로 삼는 본격 추리 소설이나 사회적인 사건을 다루는 사회파 추리 소설 같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장르가 있는 반면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사건을 다루는 일상 추리 소설도 있다.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이 중에 일상 추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가에데에게는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가 있다. 양친과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이라고는 전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자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뿐이다. 젊은 시절의 총명함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가에데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를 위해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스터리를 찾아서 할아버지에게 들려주며 일종의 두뇌게임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여러 두뇌게임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경찰도 명탐정도 아닌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와 그 손녀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그 추적을 이야기로 상상한다는 줄거리다.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줄거리는 사실 그렇게 자극적이지는 않다. 요즘 드라마나 장르 소설을 표방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앞부분에 자극적인 사건을 제시하고는 한다. 살인이나 폭력 혹은 섹스 같은 사건을 나열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도 그런 수법을 뻔히 알지만 사로잡히는 독자이기도 하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초반 부분에 약간 몰입감이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캐릭터들이다.

 

이 소설의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살아있고 개성적이며 재미있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가에데는 비교적 평범한 배경 탓에 뭍히는 감이 있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섬세한 애정을 읽힐 때마다 내 마음마저 흐뭇해진다. 할아버지인 히몬야는 그런 캐릭터 구축의 절정에 다 달은 인물이다. 치매 노인이 추리를 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게 할까 하는 데, 작가는 그 치매마저도 일종의 특수한 능력으로 탈바꿈시킨다. 작중에 히몬야는 환시를 보는 치매를 앓는데 추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 환시를 일종의 강력한 추리 도구로 사용한다. 사건 과정을 환시로 떠올리면서 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게 한다. 한 독자로서 상당히 감탄한 캐릭터 조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연이라고 할 만한 여러 인물도 개성이 풍부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소설에서 인물이 여럿 모인 장면은 어색해질 때도 있는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여러 인물이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연민 어린 시선이다. 최근에 등장인물을 추리 트럭의 희생물로 삼는 추리 소설을 읽었어서 이러한 점이 더욱 눈에 띠인 것 같았다. 가에데가 치매 환자인 히몬야를 돌보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함으로써 돌봄이라는 화두에 관해서도 설명해나간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도 관심 있게 다루는 문제인지라 이러한 돌봄을 다루는 것이 내게는 신선하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 사회적 약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들이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추리 소설 이상의 소설이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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