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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한 작가가 죽은 뒤에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기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가 그 작가를 기억해 주어야 하며 뛰어난 한 작품만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꾸준히 좋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소설을 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작가 박완서는 그 어려운 걸 달성한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군인 시절에 진중 문고로 들어온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가>를 읽었다. 속도감이 빠른 소설을 선호하던 당시에도 그 소설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 소설이 1부이고 2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설의 2편 격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연달아 읽었다. 원래는 3부까지 계획했다는 작가의 말에 3부는 나오지 않는구나 하는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남는다.
박완서 작가는 워낙에 많은 작품 활동을 해온 분이고 그중에는 산문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창 작가 활동을 이어나갈 때는 여성지에 정기적으로 산문을 연재해 오셨고 그중 많은 산문이 책으로 묶어져 출간되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그 산문집을 박스 세트로 구매할 수 있다. 이 책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그중에 정수라고 할 만한 산문을 모은 책이다. 거장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산문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산문은 박완서 특유의 일상적인 사건에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옮겨놓은 책으로 솔직한 내면 풍경을 고백하고 그 과정을 수려한 문체로 적어나간다. 솔직한 감상, 느낌은 요즘 에세이들도 많이 시도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박완서 작가만큼이나 읽는 이를 감동으로 몰고 가는 작가는 몇 없는 게 사실이다. 문장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아서 그 문장들에 줄을 친다면 책이 새까메 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작년은 박완서 작가 타계 10년을 맞이해서 고인의 작품에 대한 회고가 이루어졌다. 예전에 발매되었던 책들도 다시 주목을 받았고 새로운 이름으로 작품을 모은 책들이 속속 출시되었다. 먼 미래에는 분명 박완서보다 훌륭한 작가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처럼 1930년을 시작으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온 작가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