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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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을 읽고

 

한강 작가의 작품집인 여수의 사랑을 읽었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같은 경우에는 아예 책을 사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을 먼저 읽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을 먼저 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이유를 생각해 봐도 어쩌다 보니 그렇다 정도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손만 닿으면 읽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보니 오히려 읽지 않게 된 걸 지도.


여수의 사랑은 6편의 단편이 묶여있는 단편집이다. 우선 놀랐던 건 90년대에 출판된 소설임에도 60년대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절망감이 저편에 깔려있는 것이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이범선 작가의 오발탄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놀란 건 여성작가임에도 여성이 쓴 글 같지 않았다. 어찌 보면 차별적인 말일수도 있겠지만, 90년대 여성작가의 전반적인 특징은 세밀한 묘사와 흐릿한 서사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단편들은 빼어난 묘사가 존재하지만 서사는 사건 위주의 전재를 보여준다. 한강이라는 이름을 가리면 남성작가가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다.


6편의 단편 중, 어느 작품이 좋다고 뽑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섯 편의 작품이 모두 훌륭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다섯 편의 작품이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던 것. 이건 작가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인물 구도와 구성이 반복되면, 작품 하나하나가 뛰어나도 다섯 편을 연달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가는 왜 비슷한 소설을 쓰는 것 같지?’ 같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런 구성의 반복이 티 나지 않게 하는 것도 작가의 재주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경우는 깊이 있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줌으로서 그것을 극복한다.


모두 뛰어났지만,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어둠의 사육제. 어둠의 사육제의 경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여수의 사랑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연애하는 내용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 아닌 더 추상적이고 모호한 느낌이다.


여수의 사랑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과거의 상처로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는 결벽증을 가진 정선과 그와 반대로 너저분하고 털털하게 살아가는 자흔은 월세를 나눠서 내려고 하는 정선이 룸메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끝없는 결벽증 증세를 통해서 세상을 혐오하는 정선이지만, 자흔을 만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는 결벽증 증세는 마음과는 반대로 자흔을 밀어내고 결국 자흔은 정선을 떠난다. 자흔은 정선이 떠난 뒤에야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고향이었던 여수로 떠난다.


여수의 사랑의 결말은 정선이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앞에서 말한 어둠의 사육제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들도 여수의 사랑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과거에 상처를 입었으나 그 상처를 외면 혹은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거나 모종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 상처는 가족의 상실과 관계된 이야기이기에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고아이거나 부모 한쪽이 상실 된 인물들이다.


앞에서 이 단편집의 소설들이 어두운 분위기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름다운 소설이기도 하다. 뛰어난 작품은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게 만들고 싶게 만든다. 다행히 우리 집 서가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꽂혀있고 손만 닿으면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읽고도 그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 것은 변명할 필요도 없이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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