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여성‘의 불행에 대해여

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을 배우는 강의를 듣다 보니 가끔씩 교수님이 ‘이 작품이 괜찮으니 한번 읽어봐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호기심에 몇 번 읽어보니 실제로도 괜찮은 작품들이 많아서 전부는 아니어도 여건이 허락하면,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82년생 김지영>같은 경우에는 자주 읽는 민음사 젊은 작가전으로 출시된 책이었기에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흔히 말하는 페미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드러나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는 여성차별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어로 비판한다. 목적성이 뚜렷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문학의 사회 참여적인 기능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유의 소설은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바꿀 수 없고, 그것을 소설로서 해낸다는 생각은 오만한 것이다라는 나의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음으로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이전에는 가진 적 없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의 형태는 일종의 보고서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담는 문장은 서사와 묘사를 담을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로 존재한다. 소설의 에피소드 또한 평범한 여성의 삶에서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의 집합소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끔찍하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김지영 씨가 주변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따라서 흉내 내는 이상증상을 보인다. 그 흉내의 수준은 단순히 말투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김지영 씨가 모를 개인적인 사연마저 알고 있는, 귀신에 빙의된 건 아닐까 하는 수준의 흉내 내기였다. 아이를 낳다가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선배,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 어머니. 그 흉내 냄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남편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시작한다. 김지영 씨를 상담한 의사는 년도 별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다.

김지영 씨는 삼남매의 차녀로 태어났다. 1980년대는 남아선오사상이 심하던 때라 김지영씨를 나았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도 축복받기는커녕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을 가진다. 남자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국에 그녀의 어머니가 세 번째로 임신한 아이를 낙태하게 만든다. 네 번째 임신을 했을 때. 그 아이는 다행히도 남자아이였기에 아이가 태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한 어린 시절, 초등학교와 그 이후 그녀가 겪었던 수많은 차별들에 대해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수년을 살아오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 드라마라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만한 결말은 이 소설에서는 본격적인 비극의 서막으로 사용된다. 아이를 가졌지만, 사회에서는 지하철 자리 하나 양보받기 힘들고,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존재하지만,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게 하거나 암암리에 눈치를 주면서 차라리 일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준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던 김지영 씨는 결국 출산을 위해서 일을 그만두고 만다. 당연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

김지영 씨 같은 경단려를 위한 국가의 대책도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경력도 있는 김지영 씨가 찾을 수 있는 직업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파트타임 업무다. 남편은 이런 상황임에도 육아를 ‘돕는’다고 말한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게 김지영 씨의 일인 것처럼…

김지영 씨의 마음을 무너트린 사건은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 순간에 일어났다. 1500원 짜리 커피를 사먹는 그녀를 향해서 그녀를 보고 있건 회사원들에게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다. 남편의 돈으로 싸구려 커피를 사먹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소설은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째서 육아가 힘들고, 육아의 부담이 여성에게 더 치우쳐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지영 씨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여성이 어떤 식으로 차별을 받았고, 자라왔는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남성들은 여성의 차별에 대해서 몰이해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김지영 씨를 진찰한 의사마저도 그런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가의 저출산 해결 노력에도 출산율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심도 깊은 고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방대한 차별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25살의 남성으로서 부조리한 일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을 걷고 있는 내 어머니와 친구 평범한 여성들에게 이런 차별이 암암리에 가해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목적성이 확실한 이 소설은 분명 평소에 내가 좋아할 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나와 당신이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