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혹은 애슐리
김성중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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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개하는 김성중의 스펙트럼-

 

내게 김성중은 <허공의 아이들>의 작가다. 조각으로 잘려서 매일 허공으로 날아가는 땅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고 또 재미있었다. 작가에게 젊은 작가상을 안겨준 <국경시장>은 어떠했나? 동남아시아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낸다.

 

<에디 혹은 에슐리>는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김성중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일명 환상적인 소재나 이야기를 등장시킨 바 있다. 개인적으론 이번 소설에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된 부분도 있으나 소설 개개의 스펙트럼은 기존의 장점에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꽤 하는 것 같았다.

 

<레오니>는 필리핀의 이주 노동자 가족이 할머니의 생일을 맞춰서 온 가족이 귀국하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필리핀은 대표적으로 자국민을 이주 노동자로 수출하는 나라다. 필리핀의 경제 성장률은 외국에 나간 노동자가 입금하는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실제로 그러한 필리핀의 상황을 잘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1960~80년대 사이에 외국인 노동자를 파견하던 역사적 상황과도 일치한다. 일종의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화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이 서술하는 문체가 수준급이었다. 전세계로 흩어진 대가족이 한집에 모여서 흥청거리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명절을 보는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인지 사람 사는데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성을 탈피하고 환상성을 추구하는 김성중 작가의 소설이 필리핀의 이주 노동자 가족을 소재로 삼은 건 김성중 작가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사유가 이전에 탁월하게 보여주었던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국적인 배경으로 독창성을 확보하려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디 혹은 에슐리>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아슬라>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아슬라> 초반엔 남자로 나오던 인물이 나중에는 여성으로 다시 등장했을 것이다. 트랜스 휴먼을 소재로 작가의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퀴어를 다룰 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식. 혐오를 같은 혐오로 받아치는 방식의 서사는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에서는 미러링이라는 말으로 라도 포장 가능하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는 용납 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상속>은 현대 문학상 수상작으로 내겐 심금을 울리는 소설로 남았다. 일찍 요절한 젊은 소설가와 방황하는 작가, 암에 걸린 소설가 지망생. 세 등장인물이 하나 하나 쌓아올리는 장면과 대화 그들이 남기는 말들. 문학은 의미를 잃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선 가치 없다고 매도당하지만 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예도 부도 아니다. 그저 쓴다는 행위와 그 행위가 끝내 고귀함에 닿는 이야기.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각각의 소설가는 각각의 이유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말은 작가 개인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알 수 있지만, 타인이, 나아가서는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때때로 어떤 종류의 인간은 무언가에 빠져든다. 왜일까? 아무도 모른다. <상속>에서 내내 던져지는 질문들이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이유가 어떤 언어로 정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 개개인의 영혼, 그 안의 조그만 서랍 속에서 튀어나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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