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0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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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집 읽기를 좋아한다. 심사위원들이 고생하며 찾은 좋은 소설들이 실렸고 거의 가 새롭고 좋은 소설일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나는 명실상부한 한국 소설 애호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예지를 찾을 정도로 대단한 애호가는 아니다. 나는 단행본을 읽기를 선호하기에.

 

애정하는 수상집은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집>, <현대 문학상 수상집>, 그리고 매계절마다 얇은 소설집을 내는 <소설 보다> 시리즈다. 일 년에 세 권 혹은 네 권이 발매되는데 인기가 좋은 건지 이제는 네 권씩 내준다.

 

이번 2020 겨울편은 평소와 같이 세 편의 소설들이 실렸다. 세 명의 작가 중 아는 이름은 임현 작가밖에 없다. 이미상 작가는 <하긴>이라는 소설로 이전에 젊은 작가상을 받은 경력이 있고 전하영 작가는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에 대해서 말하자면 실험적이지만 좋은 소설도 많다는 것.

 

이미상 작가의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여성의 일상적인 불안을 다룬 소설이다. 느낌은 서나는 혼란스럽지만, 작가의 문체까지 난해한 것은 아니었기에 스토리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겨우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온갖 불안에 떤다. 나도 어린 시절엔 어두운 골목을 무서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성징을 거치며 성인 남성의 신체를 가지게 되면서 그런 공포는 완전히 사라졌다. 어두운 산도 혼자서 잘 다니는 나다. 그러나 여성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사회적 약자라는 노인들도 젊은 여성이라면 만만하게 보고 시비를 걸기 일 수다. 그런 고민을 뻔하지 않고 완전히 새롭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적이다. 한국 소설은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냈지만, 너무 많아지는 것도 문제다. 구조나 사건이 비슷한 여성 살해 서사를 다섯 편 연달아 읽다 보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민하게 되는데 그런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좋았다.

 

임현 작가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대학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가 있다. 그 양반이 쓴 대학 공간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참... 교육이라는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법칙을 채운 이들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이미 한국 문학계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한 임현작가는 이 뻔한 서사를 흥미로운 사건으로 변형시킨다. 그러면서도 거기에서 정확히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보여주지 않는 노련함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임현 작가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소설은 꽤 즐겁게 읽었다. 임현 작가가 좋아하는 도플갱어소재가 아니어서 좋았다. 도플갱어 소재만 아니면 된다. 임현 작가는.

 

전하영 작가의 <조명등>은 간만에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단편 소설이었다. 도대체 영화판은 뭐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이 소설판으로 넘어오게 하는지. 살다보면 거지 같은 연애를 반복하는 여자들을 발견한다. 대학 시절에는 어떤 여 학우가 나이많은 남자와 사귄다고 친하던 무리와 멀어진 것을 보기도 했고 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여러 명 만나는 말그대로 네이트 판 같은 이야기를 자주 봤다. 그들은 항상 남자 볼 줄을 모른다. 이 소설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낭만주의가 특정한 남자들에게 권력을 쥐어줄 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젊은 여성을 착취하는지 알고 있다. 예를 들어볼까? 나는 최근에 좋아하던 밴드의 남성 맴버가 나이 차이 나던 연인을 성 착취 했다는 혐의로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성적인 노래를 주로 작곡했는데 내겐 힘든 시기를 넘기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노래들이라 충격이 정말 심했다. 그 즉시 노래를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 노래를 부른 여성 보컬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그러한 남성 예술가에 대한 낭만주의가 어떤 폭력을 낳는지 혹은 용인시켜 주는지를 알려준다. 보통은 이런 소재의 경우 그들을 만나는 어리숙한여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의 시점에 따라서 진행되는데도 그러한 가치 판단이 없어서 좋았다. 소설의 화자가 젊음의 좌충우돌을 모두 겪은 시기라서 그런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었다. 잘 알려졌듯이 암에 걸리고 난 뒤에 간신히 살아 돌아온 허지웅 씨는 그 후에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의 논조가 바뀌었다. 그전에는 주변의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모두 까는 이였다면 요즘에는 훨씬 인간적으로 바뀌었다. 글도 졸라 더 잘 쓰는 것 같아서 정말 좋은 책이었다. 허지웅은 그 책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과 같은 20대를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 책을 썼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조명등>의 화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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