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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사람들은 ‘정상/비정상’이라는 기준을 두고 모든 것을 평가한다. 전자에 속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누군가를 후자에 속한 존재로 만들고, 그렇게 후자가 되어버린 자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고, 결국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신병동은 그러한 기제가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를 현실로부터 배제시키기 위한, 비록 중간에 피넬 박사에 의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을 겪었고 오늘날에는 지역사회에 기반한 모델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 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베로니카의 삶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녀는 이 땅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즐거움을 자신이 겪었다고 자부했다. 이후에 다가오는 삶은 반복의 연속일 뿐이었다. 변화라곤 찾아볼 수 없을 그 평탄함이 그녀는 괴로웠다. 부모님의 말을 따라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도서관 사서라는,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직업이 전부였다. 더 나아질 것이라곤 조금도 없는 것 같은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죽음을 결심하는 것뿐.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만큼 영예로운 것도 없으리라. 그녀는 수면제 과다 복용이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덜 폐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을 택했고, 자신의 조국 슬로베니아를 알리는 글을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생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육체를 이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아니었다. 굵은 튜브와 의료 기기들에 의지한 자신의 모습은 실패자의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젊고 예뻤으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그녀의 이름은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빌레트.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공포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이미 오래전 사라졌어야 하는 전기치료도 감행되고 있다는 그곳에 이제 그녀는 누워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심장은 앞으로 그녀에게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반쯤 성공한 죽음이라고 할까? 그것은 벗어나고 싶은 형태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머지않아 어차피 죽게 된, 그런 인생을 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젊음은 그녀에게 많은 가능성이 존재함을 의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분명 자살시도를 했지만 정신병원에 갇힐 만큼 미치진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두려웠다. 모두가 미쳐있는 그 공간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미친 척 하는 것이 최선의 방침임을, 그리고 그녀에게 남아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은 그녀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빌레트를 안락하게 여기고 미친 척 하며 살아가고 있는 ‘형제 클럽’ 사람들이 있음을. 미쳤다고 일컬어지는 이들에게도 각자 나름대로의 삶이 있으며,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때부터 그녀는 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마음 속 가득 찼던 근원 모를 분노를 피아노 선율과 함께 쏟아내 버린 어느 날, 그 밤마다 자기 음악의 유일한 청중으로 존재하는 에뒤아르와의 교감 속에서, 그녀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에뒤아르는,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못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인 것이다. 그녀에게 살아야겠다는 이유를 불러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싹트고 있던 ‘사랑’의 존재를 그녀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틀을 뛰어넘어 빌레트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죽기에는 너무 젊은, 하지만 죽음에 임박한 그녀의 삶은 제드카와 마리아에게 지금껏 존재치 않던 용기를 발산토록 만들었다. 그들은 베로니카를 통해 지금껏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팠지만 그럴 수 없게 만들었던 벽을 뛰어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 편한 세상(빌레트)를 놔두고 혼란의 물결이 이는 보스니아로, 자신의 쓰임을 믿으며 떠나버린 마리아를 향해 ‘형제 클럽’ 사람들은 이제 그녀가 완전히 미쳤다고 말했지만, 정작 미친 건 그들이었음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삶을 꿈꾸게 해준 존재 에뒤아르에게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베로니카는 죽음의 향기를 뛰어넘어 기적적으로 허락된 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영원히 기적일, 그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 나는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죽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어린 마음에 바라보았던 20 이라는 숫자는 한 인간에게 갑작스레 너무도 많은 삶의 무게를 허락하는, 지나친 자유였고,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2000년 새해가 밝는 그 순간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흉측한 소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그 때, 아이러니하게도 스무 살에 죽겠노라던 나는 “더 살고 싶다” 아니 “더 살아야만 한다”를 강렬히 외치고 있었다. 삶은 어쩌면 그런 것인가보다. 죽음을 결심하는 그 순간 비로소 내 눈에 맞는 안경을 끼고 세상의 다채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강렬히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되는 그 무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