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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를 의심한다 ㅣ 서해역사책방 2
강만길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는 과거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는 눈과도 직결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성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도 달라진다. 보수와 진보, 각기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두 축에 속한 이들이 각각 지난 군사 정권을 달리 해석하듯. 우리의 역사는 어쩌면 참으로 경직되어 왔던 것 같다. 여느 나라나 자국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축소하고픈 욕구를 지니고는 있겠지만, 문학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단 한가지 길만을 ‘진리’로 열어놓고 모든 이들에게 그 길을 강요했던 우리의 교육은 다음 세대가 지닐 수 있는 모든 창의력을 고갈시켜 버렸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권위주의와 권력 지향적 사고는 어쩌면 그러한 교육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는 것이 지난 날이다.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현재의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 역사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역사 교육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본인이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통일신라 라는 단어보다는 남북국 시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북쪽의 변방 국가 마냥 받아들여지던 발해를 우리의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부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온다. 특히 제도권 교육에 익숙한 나머지 그 외의 길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와 같은 난해함은 우리 역사의 시초로 일컬어지고 있는 단군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비롯된다. 단순한 신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 사실로써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사실을 두고 친일파와 민족주의 진영 사이에서 교묘하게 사용되었던 단군에 대한 고찰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임나일본부의 경우, 일본의 극우주의적 흐름이 그 농도가 짙어짐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왜곡과 동시에 지난 날 동아시아 지배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주체였던 가야 제국은 배제한 체 ‘임나’에 대해 논했던 지금까지의 지루지리함은 탈피해야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다시 해석되고 있는 광해군에 대해, 그가 왜 왕으로부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 역시 돋보이고 있다. 왕위 계승에 있어서의 정당성 결여와 시대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명과 후금 사이에서의 중립외교 그리고 왕실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무리한 중건 속에서 그의 정치는 빛을 바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수파였던 북인의 실패이기도 했으며, 노론 중심의 질서 재편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지난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 물산장려운동, 105인 사건 등 우리의 역사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사건들을 다시금 해석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냉전 상태에 고착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수한 남북단절의 상황은 모든 것을 뒤로 제쳐놓은 체 국방의 필요성을 과대 포장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었으며, 그 안에서 평화와 진보, 민주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에 우리 사회에서의 진보는 성취되기 힘들었고 사상에 있어서의 풍요 역시도 제한되었다. 수많은 친일 행각들이 민족적 행위로 묘사되고, 평화를 지향하는 행위들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위협으로 비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은 현재의 역사를 쓰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시대는 변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닮은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경직된 사회에 새로운 변혁의 힘을 불어넣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