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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학론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34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박상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이탈리아 대중 문학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독자들이 이탈리아 작가의 글이 아닌 프랑스 등의 다른 나라 작가의 글을 즐겨 읽는 현실에 대하여 그는 당시 이탈리아 작가들의 엘리트 의식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스스로를 국민의 교육자로 여기는 작가들의 태도 속에는 대중의 욕구에 대한 고려가 존재치 않았고 이는 작가로 하여금 대중과 연대 의식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렇게 작가는 대중의 욕구와 괴리된 작품들을 만들어냈으며 하나의 특권층이 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써나간 글에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개성이 부재하였다. 그람시는 예술성과 동시에 대중성을 겸비한 무언가를 바랬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문학은 문명의 실제 요소인 동시에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작가들은 그러한 창조성을 갖추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들은 프랑스 역사 소설을 읽고 자란 이탈리아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 이탈리아 외에서 소설의 주제를 찾았다. 지독한 상업성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할 수 없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소설들은 민주주의 이념과 동시에 소 부르주아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의 작가들은 헤게모니 장악 욕구, 즉 부르주아로서의 작가가 프롤레타리아인 대중 계급에 대한 헤게모니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욕구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작가 만초니를 통해 부르주아로서의 작가를 엿보았다. 그에 따르면 만초니의 대중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롱이었고 동정이었다. 그것은 귀족적인 카톨릭주의의 시각이었으며 대중을 단지 자선의 대상으로 보는 특권층의 시각이기도 하였다.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대중 교육의 의도를 가진 문학이 대중의 정신적 관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문학의 비 대중성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이는 유럽의 다른 국가가 국민화의 현상을 경험했던 것에 반해 이탈리아만큼은 유럽적 시각을 고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특성은 문학의 종류에 있어서도 회고록이나 평전, 자서전 등에 대해 무관심한 이탈리아 작가들의 성향으로 이어졌다. 즉, 살아있는 현실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 속에서 이탈리아 문학은 현실로부터, 대중으로부터 괴리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역사 속에서 이탈리아가 가장 화려한 모습을 간직했던 순간 중 하나인 ‘르네상스 시기’에 대해서도 부정한다. 그람시에 따르면 르네상스는 진실된 의미의 문화적 부흥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궁정의 자기 과시적 예술 장려 정책 속에서 양성된 거짓 문화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듯 역사 속에서 이탈리아는 대중과 지속적으로 괴리되어 왔으며 그로 인해 그람시의 시대에 대중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의식의 형성에 실패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도 그람시가 살았던 이탈리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나부터가 우리 나라 작가의 소설 보다는 외국 작가의 소설을 읽고 그 안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이문열 님의 글에서 보수 반동을 느끼고 신경숙 님의 글에서 현실 도피를 엿본다. 교묘하게 한국 사회의 진실을 외면하는 작가들의 글 속에는 우리 자신의 것이 존재치 않는다. 작가들에게 존재하는 대중적 온정주의나 귀족주의는 그들의 작품을 순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는 있으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스테디셀러로 만들지는 못한다. 동시에 작품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그 안에서 우리의 본질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헤게모니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왜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냈는지를 묻는 것은 어쩌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요구되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지도 모르겠다.